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대로 동행 Mar 28. 2023

말로 하시죠

아들들의 반란

외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전에 없는 반항을 해서 힘들어하는 지인과 통화를 했다.  집 아들이 우리 막내와 함께 수학학원을 다니는데 애가  많이 변해서 낯설 때가 있다고 말하던 차였다. 지인의 아들인 보리(가명)는 어려서부터 온순하고 부모말을 절대적으로 잘 따르는 애였다.  스마트폰, 게임은 일절 금지였고, 시키는 대로 공부며, 할 일을 잘 해내는 착실한 엄친아였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스마트폰을 쥐어주자 아이가 돌변했다. 매일 폰으로 하는 게임에 빠져 살다가 급기야 폰을 뺏으면 pc방으로 직행한다는 것이다. 게임을 하느라 학원 수업도 종종 빼먹고, 엄마와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아들로 인해 지인은 한숨을 푹푹 쉬며 하소연했다.

" 이제 매도 안 들어요. 때려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방법이 없네요."


그 말을 듣고 우리 아이들과의 일이 생각났다. 남자애들이라 엄마가 하는 말을 종종 무시했다. 남자 애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선택적 청력을 보유해서 수시로 엄마 말을 흘려듣고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답답해서  매를 들었다. 당시 혼돈의 사춘기를 지나는 큰 애에게  훈계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져서  매를 든 손이 올라가는 찰나, 아이가 순식간에 나의 손목을 잡고 매를 뺏었다.


 " 말로 하시죠. 이게 굳이 매를 들 일인가요?"

순간 나는 얼음장처럼 굳어진 몸으로 한동안 선 채 할 말을 잃었다. 아이의 말과 나의 행동 중 무엇이 옳은 것인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거듭했다. 결국, 엄마의 민망함을 피해보려고 나는 더 고개를 빳빳이 들고 "그래. 그러게 말로 할 때 들어야지. 왜 엄마가 매를 들게 하니?" 하면서 아들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았다.

팽팽한 기싸움의 시작이다.


아들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제야 뺏어간 매를 내려놓고

 "네. 들을게요. 이제 말로 하세요."라고 한다

결국 나는 그날 아이를 다시 앉혀 놓고 엄중하게 말로 훈계를 마무리했다.  그때 나는 더 이상 아들이 내가 이끌기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이들은 부쩍 힘이 세져서 이제는 한참 중2병에 시달리는 막내마저 엄마와 언쟁을 벌이다가 엄포용으로 매를 들면 그야말로 번개같이 매를 낚아채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엄마는 도저히 힘으로 아들을 감당할 수 없다. 엄마 덩치를 훌쩍 넘어선  한창 혈기 왕성한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엄마가  더 이상 이전처럼 강한 엄마가 아님을 시인하고, 아이들에게 온유해져야 하는 때가 왔나.   한참 고민에 빠진 나에게 남편이 넌지시 훈수를 둔다.

"내버려 둬. 이제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 줄 때가 된 것뿐이야. 꼭 필요한 말 외에는 가급적 하지 말자고."

같은 남자로서 아들을 더 잘 이해하는 남편의 말이기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놓아주어야 하나 보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아이들을 그대들 마음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그대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왔을 뿐 그대들의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지만 그대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관리자일 뿐 결코 소유자가 아님을 명심하라.
ㅡ칼릴 지브란 '예언자'중-


내 소유가 될 수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판단으로 우뚝 서서 독립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도록.... 그저 지켜만 보며 엄마의 말을 최대한 아껴야 되는 날이 왔나 보다.


한창 학업스트레스와 친구관계,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혈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슴 조이는 아이들을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혼자 헤쳐 나가도록 떠나보낼 때가 다가온다.  


아들들의 반란으로 매가 더 이상 소용없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엄마는 아이가 품을 떠날 준비가 됐음을 깨닫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