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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un 03. 2022

체제의 희생양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묻다.

이반 데니소비치 , 수용소의 하루를 읽고

인간을 인도하는 희망의 등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헛된 희망에 의지하지 않고 생명의 본능으로 절망에 맞서는 사람의 모습을 써보고 싶다.

소설가 김훈은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작을 소개하며 이 말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인간은 헛된 희망이 아닌 생명의  본능으로 버텨온 건가?


소련의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바로 그런 희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순전히 생명의 본능으로 살아온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하루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슈호프는 1951년 독소전 참전 당시 포로로 잡혔다가 간첩행위를 한 것으로 오인되어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목으로 소련의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인 굴라크로 끌려가 무려 10년, 정확히 3,653일을 인간 이하의 비참한 환경에서 생활한다.


이 책은 그 3,653일 중 하루의 일과를 사실적이고 건조하게 묘사하여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영하 30도를 오가는 날씨에 새벽 5시부터 기상하고 식사시간은 단 5-10분에 멀건 죽과 고작 빵 200그램, 누더기를 기워 만든 옷을 입고, 빈대가 일상적으로 들끓고 사람들의 체취와 더러운 공기와 섞여 숨쉬기도 버거운 비위생적인 나무 막사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단체 생활을 한다.

하루 종일 살을 에는 듯한 영하 30-40도의 날씨 속에서 극한의 노동에 시달리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야만적인 점호와 신체검사 등에 시달리다가 겨우 빈대 가득한 담요 한 장에 의지해 잠을 청하며 주인공은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솔제니친은 자신이 27세의 나이에 끌려가 스탈린이 사망할 때까지 8년 동안 직접 경험했던 강제 수용소의 경험을 이 책에 그대로 녹여내 일약 세계적인 작가 대열에 들어섰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 소련에서는 작가 동맹에서 제명당하고 , 가족을 고국에 둔 채 미국으로 강제 추방을 당했다가 말년에야 고국으로 돌아와 2008년에 생을 마쳤다.     


주인공 슈호프가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부농이거나, 체제 비판 등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들어와 언제 수용소 밖으로 나갈지 모르는 기약 없는 고문의 나날을 보낸다. 그들 모두 한 때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꿈을 키우는 시민들이었지만 이제는 강제 수용소에서 기본 10년, 관리자 눈밖에 나갈 시에는 근거도 없이 10년씩 더해지는 야만적인 처사를 감당하며 산다. 한 때는 전직 고관, 해군 중령, 영화감독, 기술자 등의 화려한 사회생활을 했지만 이제 그들은 모두 수용소 내의 비루한 범죄자일 뿐이다.


햇살 같은 환한 일상을 살다가 책장을 펼칠 때마다 갑자기 어둡고 혼탁한 죽음의 수용소로 홀로 내던져진 듯한 경험을 했다.

슈호프의 하루가 숨 막히도록 갑갑하고 비참해서 내내 불편함 마음으로 읽었다.

번역가 이영의는

‘이 책은 어떤 특별한 날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비극적인 삶의 모습, 매일 똑같이 되풀이되는 하루의 묘사를 통해 절망적인 인간의 가장 비참한 삶을 보여준다'라고 했다.

가장 비참한 삶의 모습,  곧 희망 없는 사람이다.


수천만 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과 강제 이주로 몰아넣었던 악명 높은 소련의 스탈린 체제에서 무고한  희생양으로  강제 수용소에서   비참한 삶을 산 슈호프와 그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이 책은

전 세계의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를 비판한다.

또한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존엄과 희망의 의미를 묻는다.


슈호프가 잠자리에 들면서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라는 말을 통해 이미 그가 저항의 의지마저 상실할 정도로 수용소 내의 부조리에 철저하게 순응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더 비극적이고 아프다.      


수용소 내 단 하루의 삶을 중편 분량의 소설 한 권으로 묘사한 작가의 필력과,  아픈 기억을 더듬으면서 누군가 해야 할 고발의 의무를 수행한 솔제니친의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


체제의 희생양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묻는 그의 질문은 오늘 어딘가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슈호프가 있는 한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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