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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Dec 02. 2023

인생은 아름다워

10대가 본 세상

시조카 결혼식이 주말에 있어서 막내 성이와 남편, 어머님을 모시고 미리 사둔 멋진 정장을 입고 주말에 서울 시내 모 호텔로 향했다.


조카는 평상시 상상조차 못 했던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키가 큰 훈남 스타일의 신랑도 말쑥한 정장으로 아름다운 한쌍을 이뤘다.


 식사를 하면서 주례 없는 축사, 축가, 축하 행진 등을 지켜보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즐겁게 담소를 나눈 뒤, 식장 장식에 쓰였던 수국과 백합꽃으로 만든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15세인 성이는 그날 성대한 결혼식 장면이 인상적이었는지 나에게 와서  “엄마, 결혼식이 참 감동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어린 성이의 입에서 나온 ‘감동적’이라는 말에 대한 의미가 궁금해서 물으니 아이의 대답이 뭉클했다.    


“엄마, 요즘 세상 돌아가는 뉴스나 주변을 보면 온통 슬프고 머리 아픈 일들 뿐이쟎아요.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등의 전쟁, 기후위기, 게다가 뉴스에 종종 나오는 각종 잔혹한 범죄들은 어떻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저는 세상이 살아가기에 너무 험악하고 비극적인 곳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이렇게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평소에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아 몰랐는데 성이가 세상 돌아가는 뉴스 등을 보며 이렇게 인생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니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그래서 결혼식이 감동적이었어?”

라고 물었더니 성이 왈

“결혼식을 보면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는 신랑신부와 기뻐해주는 하객들, 예쁘게 장식된 식장의 분위기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아, 세상은 살만한 곳이구나. 인생에는 이렇게 감동적인 순간도 있구나."


아이의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숙연해졌다.

아이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그리고 그런 결혼식을 직접 경험했음에도 내가 보았던 결혼식은 의례히 치르는 관문이고,  하객으로서 챙겨야 될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10대의 어린 아들은 내가 전혀 보지 못했던 결혼식 이면의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냈구나. 수정처럼 맑고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촉촉해졌다.      


아이의 말대로 뉴스를 보기가 겁날 정도로 세상에는 온갖 비극적인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된다. 지구촌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야만적인 전쟁 소식은 물론이고, 온갖 자연재해, 기후 위기, 범죄등으로 비극을 몸소 겪고 오열 속에 무너진 사람들의 모습은 또 어떤가.

 

어느새 이런 혼탁하고 비극적인 뉴스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우리 삶의 감각까지 마비된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뉴스와 상황들을 온몸으로 맞고 고민한다. 그것이 자기들이 살아갈 세상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남몰래 절망도 한다.


아이들의 예민한 촉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의 모습들이  암울해서 성이가 남몰래 속으로 삶을 비관했음을 느끼고 엄마로서, 세상의 공범인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에 고개가 숙여졌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엄마를 바라보며 아직도 인생이 살만한 것이어서 다행이라는 아이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었다.


성아, 엄마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있어. 영화의 주인공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잔인한 유대인 수용소에 5세 아들과 같이 끌려갔는데 아들에게 그곳의 비참한 상황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이것은 게임이라고 둘러댔지. 아들은 그걸 믿고 열심히 아빠를 따라다니며 희망을 품었는데 그 아빠가 어느 날 아들에게 한 말이 있어.”

“뭐라고 했는데요?”

한층 더 눈을 빛내며 묻는 아이에게 말해줬다.


“아들아.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이래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다..”


성이는 그제야 낮은 경탄의 소리를 냈다.

아ᆢ그래서 ᆢ그 뒤에는 어떻게 됐어요?”


“그 아빠는 결국 총살을 당해 죽었지만, 아이는 살아남아서  엄마를 만나게 돼.

영화에서 말했듯이, 인생은 아름다운 게 맞아.

단지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뿐이야. 엄마는 그동안 인생이 아름답다는 것을 망각하고 살았는데 너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그것을 상기하게 됐거든. 엄마에게 깨닫게 해 줘서 고마워.”


엄마의 말을 채 다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으나 ‘고마워’ 세 글자가 좋아 어깨를 들썩이는 아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인생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데, 왜 처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까.

매일 대하는 평범한 일상들, 수업하고, 식사를 차리고, 친구를 만나고, 학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모두 결혼식만큼이나 감동적인 시간들인데. 이제라도 그 눈부신 시간들을 충분히 누리고 기뻐하다 가고 싶다.   

  

창밖의 투명한 겨울 햇살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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