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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Feb 03. 2024

좋은 어른을 만난다는 건

두 배우의 상반된 삶을 보며

저녁때 막내아들이 TV를 켜고 영화 보는 데에 집중합니다. 무슨 영화냐고 물으니 터미네이터랍니다.

함께 영화를 보며 이전 터미네이터 2에 나왔던 또 한 명의 히어로 에드워드 펄롱이 생각났습니다.


에드워드 펄롱은 1991년 불과 13세의 나이로  터미네이터 2의 존 코너역으로 데뷔했습니다. 데뷔와 동시에 빼어나게 잘생긴 외모와 퇴폐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로 단숨에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요.  

오래전 봤던 영화지만 그의 연기력도 데뷔작 치고는 상당히 발군의 실력이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러나 너무 급작스레 인기를 얻었기 때문일까요?

그가 인기를 얻으면서 할리우드의 유명배우가 되자 그의 부모는 이혼하면서 양육권분쟁까지 벌여 결국 그는 이모 부부에게 맡겨졌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이모 집에서 자라지만 그들 역시 펄롱의 연기 생활보다는 그가 벌어들이는 돈에 더 관심이 많아서 그가 벌어들이는 돈을 펑펑 소비한 데 반해 정작 그는 가정에서 제대로 된 양육과 보호를 받았습니다.


운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펄롱은 자신의 재능을 B급 영화들에 바치고 그 재능이 만개하기도 전에 안타깝게 마약과 약물중독에 빠져서  2003년 터미네이터 3 제작 때는 결국 출연진에서 제외되고 맙니다.  현재 그는 40대 후반의 나이로 이전과 비교도 안 되는 초라한 외모, 가정 폭력등으로 수감된 전력 등으로 역변의 아이콘으로까지 불립니다.  


이에 반해 그와 같은 또래로 뒤늦게 영화배우 생활을 시작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지지와 성원으로 인해 처음에는  미미한 단역에서 출발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십분 활용하며 배역의 반경을 넓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 현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배우의 반열에 올라 유력한 배우이자 환경운동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요.

같은 또래로 비슷한 시기에 연기인생을 시작한 그들은  왜 이렇게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정 반대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요?


잘생긴 외모, 출중한 연기력, 그리고 연기를 사랑하는 열정까지 보이는 외면은 엇비슷하나 이들 삶의 차이를 만들어낸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이들의 삶을 제대로 이끌어 주는 좋은 어른과의 만남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드워드 펄롱은 안타깝게도 10대 어린 나이에 가족과 결별한 이후 그의 재능을 꽃피워주고, 굴곡 많은 할리우드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남는 법을 알려 주는 진짜 어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주변 어른들은 그를 한낱 돈벌이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할리우드의 온갖 더러운 이면에 그를 무방비 상태로 내동댕이쳤습니다. 나름 열심히 연기를 하며 자기 길을 개척하기 위해 분투했지만 그는 결국 마약 등의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지요.


반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는 비록 가난하나 그를 지지하고 무한대의 헌신을 감수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지지와 헌신에 힘입어 디카프리오는 소신을 갖고 자신의 꿈을 추구하며 연기력의 꽃을 피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굿 윌 헌팅'에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고아로 자라, 세 번의 파양과 가정폭력을 겪으며 세상을 신뢰하지 못하는 청년 윌( 데이먼역)이 나옵니다. 세상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 의리를 지켜주는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일용직을 전전하던 그는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진정성 있게  다가온 심리학자 숀(로빈 윌리엄스역)을 만나면서 인생의 변화를 겪습니다.


숀은 윌이 현실을 회피하고 아무도 못 믿는 것에 대해

 " 그건 그를 사랑해줘야 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하지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아 지켜줄 어른이 없다는게 윌의 삶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간파한 거지요.

다행히 영화 속에서 윌은 그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주는 숀의 "네 잘못이 아니야. 다 잊어버려" 격려에 힘입어 자신이 받은 상처를 서서히 극복하며 회복되어 갑니다.


영화 속에서 숀은 과거 상처의 덫에 갇혀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길 주저하는 윌을 도닥이며 조언합니다.

"네 마음을 따라가렴. 그럼 괜찮을 거야."


바로 이 한 마디의 격려, 위로의 힘으로 윌은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회피자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도전자로 변신합니다.

위의 두 배우, 그리고 영화를 보며 저는 제 아이들과  수업하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는 법을 가르치고, 

삶의 본이 되는  좋은 어른인지 자문해 봅니다.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10대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던 남편에게 왜 그렇게까지 교회를 다녔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당연히 남편이 '하나님이 좋아서..'라고 할 줄 알았지요.

그런데 그는 "교회 선생님이 나를 많이 믿고 사랑해 주셨어. 선생님을 생각하면 그곳이 그저 좋았어."라고 하더군요.


그의 말을 듣고 '그저 좋을' 정도로 사랑으로 돌보고 키우고 함께 해주라고  하나님은 아이들에게 부모를, 스승을, 선배등의 어른을 보내주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숀처럼 "네 잘못이 아니야. 네 마음을 따라가렴."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넉넉하고 다정한 마음의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좋은 어른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살만한  세상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우리 인생에 좋은 어른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그것은 이 두배우의 삶을, 영화 속 윌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듯  우리 삶을 좌우하는  위대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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