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맛나고 싸다는 고깃집 소문을 듣고 남편이 힘들게 왕복 1시간여 거리를 달려가서 고기를 잔뜩 사 왔다.
오겹살, 목살 등을 질리도록 먹고 나니 약간의 고기가 남았다. 우리 아이들은 아침식사도 종종 고기로 해결하는 터라 비상시를 대비해서 오겹살 약간을 남겨놨다.
마침 저녁때 반찬이 궁해서 남겨놨던 오겹살을 구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통기한이 분명 오늘로 되어 있고 고기의 색이나 모양도 지극히 정상적인데 냄새가 수상했다.
원래 오겹살 냄새는 구수하고 달짝지근한데이번 고기는 썩은 쉰 냄새가 나서 영 찝찝했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대수롭지 않게 ‘고기가 그럴 수도 있지’해서 아까운 고기를 마저 먹어 치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구웠다.
그래도 냄새가 영 개운치 않아서 내가 먼저 구운 고기를 맛봤다.
”우웩.. “
순간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헛구역질. 이건 도저히 인간이 먹을 수준이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이상이 없지만 맛은 이미 한창 썩은 뒤였다.
우울한 마음으로 아까운 고기를 통째 버리고 다른 반찬을 준비했다. 오겹살을 먹을 기대에 부풀었던 아이들의 풀 죽은 얼굴을 마주하는 곤경에 처한 건 물론이다.
간혹 내 딴에는 아낀다고 소중히 간직했다가 이렇게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음식 문제로 그런 때는 일말의 슬픔을 느낀다. 그 이후 아끼지 않고 과감히 먹어버리겠다고 다짐하곤 했지만 또다시 큰맘 먹고 비축해 뒀던 소고기가 색이 이상해진 것을 발견했다.
아, 우리의 피와 살이 될 소중한 고기를 이렇게 허망하게 버리다니......
최은숙 작가의 ‘아끼다가 똥 될지라도’ 수필이 있다. 아이들과의 수업을 위해 읽었는데 저자가 자신이 아끼던 것들에 관한 눈물겨운 경험을 쓴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의 수필에서
무엇이든지 조금은 부족해야 귀하다 (중략) 결핍이 없는 곳에는 풍요함도 자리할 수 없는가 보다
라고 했다.
부족함 없이 넘치도록 채워놓았기에 결국 똥이 되어버렸다.
먹을 만큼만 비축했더라면 그때 먹어버려 똥 될 일도 없었을 텐데, 결국 나의 욕심이 자초한 일이다.
어린 시절, 엄마한테 무언가 사달라고 말하기 쑥스러워하는 착한 딸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엄마에게 뭘 사달라고 요구하는 게 맏이로서 영 어색했다. 동생들까지 세 자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시는 엄마를 위한 내 마음속의 배려였다. 그래서 무어든 한 번 생기면 마르고 닳도록 쓰는 게 지론이 됐다.
그때 배운 결핍의 교훈을 통해서 지금도 물건은 필요한 만큼만 구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욕심도 같이 커져 무엇이든 비축하고 쌓아 놓으려 했다.
수필은 함부로 구기지 않고,함부로 버리지 않고, 함부로 쓰지 않고 , 모든 걸 아끼면서 , 귀하게 다독이면서 살자. 아끼다 똥 될지라도 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