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대로 동행 Aug 11. 2022

반지하, 그 서러운 기억

집중호우 피해 기사를 읽고

3일째 계속되는 폭우로 뉴스에서는 연일 집중호우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오늘 조간신문에서 '반지하 집 소녀의 마지막 문자' 칼럼을 읽었다. 집중호우로 죽은 신림동 반지하의 40대 엄마와 그녀의 언니, 초등학교 6학년 딸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많은 기사들 중에 유독 그 칼럼을 읽으며 가슴이 울컥해진다.   

소녀가 사고 4시간여 전 할머니에게 보냈다는 문자에는  할머니 건강하시라는 다정한 안부가 담겨 있었다.

할머니의 건강한 귀가를 위해 기도하던 소녀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다.


소녀의 죽음을 읽으며, 내가 살았던 눅눅한 반지하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당시 새로 지은 대치동의 반짝반짝한 40평대 아파트에 살던 우리 가족은 하루아침에 지금도 부동산 기사에 오르내리는 은마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당시에도 낡고 허름했던 은마아파트에 산지 얼마 안돼 또다시 이사 간 곳은 송파의 새로 지은 빌라 반지하.


난생처음 햇빛이 들지 않는 집에 살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길가, 희뿌연 먼지가 무심하게 집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24시간 컴컴한 실내에서 우리 가족은 좁아진 집에 적응하려 소중히 여겼던 가구의 태반을 버리고, 어둠과 퀴퀴한 냄새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갔다.


요즘 같은 집중호우가 내리치던 어느 날, 주일예배를 드리고 집에 왔을 때 그나마 갖고 왔던 가구와 세간살이들이 집을 삼킨 물에 잠겨있는 걸 목격했다. 이사 간 때는 마침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였다. 한창 새내기의 단꿈에 젖어 있을 때, 나는 물에 잠긴 집안을 들여다보며 진창 같은 현실의 벽을 실감했다.


스르르 풀리는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고 가족들과 종일 바가지로 물을 퍼 나르며 서러운 눈물을 훔쳤다. 언젠가는 이곳을 벗어나리라, 입술을 깨물며 다짐을 거듭했다.

가장 혐오했던 집이지만 그 반지하 집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부모님은 마침내 그곳을 벗어나 서울 한 복판 종로의 새로 지은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지금은 먼 옛날의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은 반지하집. 부모님이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눈부신 햇빛을 원 없이 받으시며 베란다를  예쁜 정원으로 꾸미고 사시듯, 나도 동생들도 지금은 새로 지은 아파트 고층으로 이사해서 마음껏 햇빛을 받으며 물에 잠길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그런데 내 삶 50년 중 불과 10년을 살았는데  다른 좋은 집들보다 그 10년의 반지하 집이 평생 나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호우가 내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죽음과 고통이 보도될 때마다 옛 기억이 나의 가슴을 후벼 판다.


 언제쯤 런 고통을 끝낼 수 있을까?

기생충 영화에 나오는 반지하 집은 단지 영화에 불과할 뿐이라고 얘기할 날은 언제쯤 올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반지하 집이 물에 잠겨 어린 소녀가 목숨을 잃는 슬픈 현실.

그 소녀를 위해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이 내 잘못이기도 한 것 같아 미안하고 부끄럽다.


아이는 모아쥔 두 손으로 할머니의 건강한 귀가를 기도했다. 장차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는 미래도 꿈꿨을 것이다.

엄마도 한 달 전 언니 침대와 아이 책상을 새로 장만했다. 가족의 행복한 앞날을 소망했다는 뜻이다. 그날 불행을 당한 이들이 있던 자리가 내 자리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꿈을 피우지 못하고 시든 이 가족의 비극이 더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칼럼은 이렇게 끝난다. 나도 그 기도에 동참한다.


소녀가 하늘나라에서는 햇빛 잘 드는 집에서 호우 걱정 없이 환히 웃으며 지내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끼다 똥이 되니까ᆢ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