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가면서 늘 소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예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희 키우기도 버거워서 강아지는 도저히 키울 수 없다고 손사래 친다.
대신 아이들 방 베란다에 주북이라고 불리는 거북이를 한 마리 키운다.
아이들의 이름이 주환,주호, 주성이다보니 주자 돌림으로 우리집 거북이는 자연스럽게 주북이가 되었다.
주북이
막내 주성이가 도맡아서 주북이를 열심히 키웠는데 말도 없고 뚱한 거북이가 영 재미 없나 보다.
가끔 나에게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게 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아이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릴 때 키우던 개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을 본 이후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강아지를 키우는 게 영 달갑지 않았다. 또 우리 집의 아들 셋을 키우기도 버거운데 강아지까지 내가 도맡아서 키우는 것은 엄두가 안났다.
아이들은 대신 집안에 강아지 인형을 몇 개씩 사놓고 각가 이름을 붙여놓고 놀곤 한다.
그런 아이들 모습을 보는 게 안스러워 한 마리 키울까 하는 생각도 했다.
막내 동생이 전화가 와서 햄스터를 키우다가 죽은 얘기를 해줬다. 햄스터가 죽어서 조카가 많이 슬퍼했다고 하길래 내친 김에 나는
"나도 반려동물을 한 마리 키울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하고 물었다.
동생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급구 만류한다.
"언니, 나도 그런 생각 했는데 지금은 아니야. 진작에 키웠다면 모를까 . 지금 반려동물을 키우면 한 10여년 키울텐데 그 사이 애들 독립하고, 언니도 갱년기 지나서 늙어갈 건데 나중에 그 동물이 죽으면 그 슬픔을 어찌 감당할려고 그래? 반려동물도 가족이야. 나중에 죽으면 가족이 죽는 것과 같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시작 안하는 게 좋다고 봐 ."
동생의 말을 들으니 마음에 확 겁부터 났다.
그래. 이제 키우기 시작하면 아무리 새끼라도 10여년 살다 갈텐데, 그 동안에 우리 아이들은 한 명씩 집을 떠나 독립을 할 수 있고, 나는 갱년기를 지나서 본격적인 노화가 오겠지. 함께 늙어가는 건 괜챦지만 키우던 반려동물이 나보다 먼저 간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컥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반려동물을 못키우겠다.
다음 생애에서 내 나이가 좀 더 젊을 때라면 모를까.
재작년 아버님의 투병과 죽음을 지켜본 이후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겪는 것만도 버거운데, 반려동물의 죽음까지 겪는다면 나의 영혼이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아쉽지만 강아지를 향한 아이들의 꿈은 이쯤에서 포기시켜야겠다. 우리 집의 넷째로 이미 굳건히 자리매김한 주북이로 위로를 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