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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Oct 06. 2022

후회하고 있다면... 잘 가고 있는 거란다

후회의 유익

수험생인 큰아들이 늘 재수를 하고 싶다고 한다. 아직 수능도 보지 않았는데 재수를 얘기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타까워 이유를 물으면 늘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 내가 아파서 고2 때 공부를 놓았었는데, 지금도 그 시간이 후회가 돼요. 그 시간을 만회하고 싶어요. 재수를 해서라도 만회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사뭇 진지하게 얘기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애써 마음을 내려놓고자 애쓴다.  아이가 이번에 대학이 되더라도, 의견을 존중해서 한 번은 기회를 줘야 하나 생각한다. 물론 엄마로서 그 생각은 나를 엄청나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한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갈 수 있는 대학을 놔두고 굳이 고통스럽고 많은 비용이 드는 재수를 하겠다는데 반기겠는가.

그러나 아이가 안 해보고 후회를 하느니, 원 없이 도전을 한 뒤 후회를 하건, 만족을 하건  부모는 기회를 줘야 한다.


아들을 보며 후회가 인생에 주는 유익이 뭘까 생각해 본다 .  나도 인생에 후회할 일을 수없이 많이 저지르고 살아왔다.  오죽하면 20-30대 시절을 통째로 바꿔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때 달리 행동했더라면, 그 인연놓지 않았더라면, 그 때 더 잘했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등 내 인생에도 후회의 순간을 기록하자면  책 몇 권 분량은 족히 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런 후회의 순간이 있었기에 자신을 더 많이 돌아보았고, 이후 선택에 대해 더 신중해졌다.


 '가치 있는 삶'의 저자 마리 루티는 '고통스러운 과거도 우리의 삶 일부임을 인정하고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과거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는 인식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동기가 된다. 또한 후회를 재해석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과거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있다면 그 덕에 공감능력이 향상될 수 있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결국 후회할 수뿐이 없는 고통스러운 과거도 나의 삶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배울 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이전의 나는 후회하는 순간들에 대해 자책하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순간들이 내 기억에 아픔으로 남아 떠오를  때마다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들의 모습 속에서 내 과거 모습을 소환한다. 반 세기 삶을 살아보니 결국 그 후회의 순간들을 통해 성숙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삶에서 늘 탁월한 선택을 하고, 후회의 여지없이 완벽한 길을 살아왔다면 얼마나 교만하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진창 같은 현실에서 허우적대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간관계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숱한 실수를 저질러 아까운 인연들을 놓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나의 연약함, 삶의 유약함을 인정하는 어른으로 조금씩 성장하지 않았나.


어쩌면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시간도 후회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나름의 분투가 아닐까?

그러나 세상에 추호의 후회도 없을 완벽한 삶이 얼마나 될까?  머지않아 나는 그때 했던 행동들, 말들, 선택들에 대해서 또다시 아프게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그 아픈 순간들로 인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줄 믿는다.  

제대로 후회하며 삶을 돌아볼 때, 그 순간들은 분명 더 나은 삶을 만들어줄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놓쳐버린 그 시간을 후회하며  배운 것도 있다고 말한다.

'겸손을 배웠어요. 제가 꾸준히 늘 잘해왔더라면 그렇게 못하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넘어지고 못한 시간이 있으니 지금은 저와 같이 넘어졌던 다른 친구들을 이해해요.'


후회한 만큼  배우고, 남이 모르는 것을 깨달은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삶의 지혜들을 배웠으니 그 시간도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위로해 준다.



 후회하고 있다면...... 잘 가고 있는 거란다.

  우리는 그 이상의 중요한 것들을 이미 배우고 있으니까.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 아직은  희망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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