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대로 동행 Aug 12. 2022

성장판 검사는 키만 해당되나요?

키만 성장하는 게 아닙니다

고3인 큰애 주환이가 공부 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자신의 꿈만큼 많이 자라주지 않은 작은 키로 인한 스트레스이다.

내가 보기엔 몸도  다부지고, 얼굴도 잘생겨서 키가 좀 작아도 충분히 커버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자신의 키가 영 못마땅하다.


“ 엄마, 나 성장판 검사 좀 받으러 가줘요.”

아이가 뜬금없이 요구하는 바람에 나는 눈이 동그레 져서 안색을 살폈다.


결국 주환이의 요구에 못 이겨 이제 중 1인 막내 주성이까지 함께 정형외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무슨 일로 왔냐기에 성장판 검사를 해달라 하니 선생님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말씀하신다.


“ 네 키가 어때서? 충분한데.. 굳이 검사할 필요가 있을까?”

그때는 몰랐다. 선생님은 이미 아이의 성장판을 가늠하고 계셨다는 것을.   

반드시 검사를 받겠다고 주환이가 우겨 막내 주성이와 함께 나란히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참담했다. 주환이는 이미 성장이 다 돼서 거의 닫혔다는 것이다.

차마 울음을 토하지 못하고 속으로 끄억끄억 삼키는 주환이 앞에서 의사 선생님은 대신 막내 주성이는 성장이 아직 시작도 안되었다며, 앞으로 클 거라고 격려해 주셨다.          

주성이는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봐, 나 늦게 자도 지장 없잖아. 앞으로 큰다니까” 라면서 신나 한다.


반면 주환이는 선생님으로부터 마치 사형선고라도 받은 것처럼 금방 죽을 듯한 침울한 표정으로 자리를 뜰 줄 모른다.


그간 키 크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우유도 열심히 먹고 운동도 조금씩 했는데..

자신이 부은 그간의 노력이 수포가 되는 것을 차마 인정할 수 없나 보다.

눈물을 삼키며 자리를 못 뜨는 주환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선생님은 그런 주환이의 모습이 못내 안쓰러운지 “애, 넌 얼굴도 잘생겼고, 충분히 멋있다. 지금 키도 충분하니 너무 연연하지 말아라.”라고 달래 주셨다.     

그러나 이미 주환이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 줄기가 또르르 내리는 중이었다.     

지금 고3이 되어 바쁜 와중에도 주환이는 가끔 그때 얘기를 꺼내며 씁쓸해한다.    

나는 학창 시절에 중학교까지는 중간대의 키였는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키 번호가 앞으로 갔다. 여고 시절에는 신체검사하는 날이  싫었다.   

키가 크고 늘씬해서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다. 다행히 키에 대한 아픈 기억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잊혔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키 작은 여학생들이 많았고 더 이상 키로 번호를 매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아들이 그 때의 나처럼 속상해 한다.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거라는 말처럼,

내 영혼의 성장판이 멈췄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지난 세월에 비해 아직 타인을 이해하는 내 아량이 자라지 않은 것,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는 못된 버릇이 사라지지 않은 것, 나이를 핑계로 더 이상  꿈꾸고 추구하지 않는 것 등.

   


내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내 삶에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임을 늘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 이문구 '끝장이 없는 책' 중-

내 삶에 점수를 매기기 위해  마음의 성장판 검사를 해야겠다.


정신은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전 14화 왜 엄마를 불쌍하다고 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