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일기 - 내 모든 무능함의 무대 1
충분히 깜깜하고 충분히 손 끝 시린 겨울 저녁, 택시 한 대가 광안대교를 타고 넘어간다. 뒷좌석의 여성은 몸을 아무렇게나 푹 널브러져 놓고는 멍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과묵한 택시 기사는 자신의 목소리 대신 라디오 소리를 흘려보낸다. 맑은 목소리의 여가수가 노래한다. 언젠가 자주 들었던 노래다. 창밖의 시린 겨울과 달리 푸른 여름밤을 노래하는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뒷좌석의 여성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한 줄기 두 줄기 흘리기 시작한다. 택시 안은 여전히 여가수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한 채다. 여성의 얼굴은 내가 아주 잘 아는 얼굴이다. 싫든 좋든 매일 거울 안에서 마주하는 얼굴이다.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고 그런 사실에 대한 배려 없이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사수 선생님이 언젠가 말했었다. 발령 첫 해의 마지막 날, 너무 바빠서 생리대 한 번 갈 시간도 없었다고. 집 가는 길에 펑펑 울었다고. 어쩌면 사수의 그날만큼 바쁜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날이 마지막 출근 날이었던 기간제 선생님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눌 만큼이었으니까. 도서관 문을 닫은 지는 오래, 다른 사무실 선생님들까지 내려와 엉망이 된 어린이실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겨우 정리를 끝내고 문을 잠그는데 사수 선생님의 말이 이번에는 종합자료실이 엉망이라 다들 가서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종합자료실로 올라가 외투를 다시 벗어두고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여덟 시를 넘긴 시각, 대충 종합자료실이 정리되고 2층 사무실로 내려갔다. 2층 사무실 선생님들이 옷을 입으며 퇴근 준비를 했다. 사수 선생님과 종합자료실 선생님은 2층 사무실 선생님들과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사수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 이제 가셔도 돼요.” 머리를 뎅 맞은 기분이었다. 뭐라 대답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로비 계단에서 가족과 통화하는 척을 하다가 돌아와 저 그럼 먼저 가볼게요, 하고 말씀드린 후 도망치듯 도서관을 빠져나오던 나의 모습뿐이다. 솔직히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뻘쭘하던 차였다. 그런데 왜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조금 내려앉는 느낌이었을까. 그 이유는 아마 그 말이 내가 또다시 사선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수 선생님에게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배려하는 선의였을 것이다.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내가 불편할 수 있으니 편하게 먼저 가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의는 그 선의를 받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잘 전달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꼬일 대로 꼬인 나는 사수 선생님의 선의를 아프게 받아들였다. ‘선생님, 이제 가셔도 돼요’라는 말은 ‘선생님은 저희랑 친하지 않으니 먼저 가요.’라는 말로 들렸고 이 말은 곧 이런 저의도 전달해주는 듯했다. ‘당신이 지금 없어져줘야 우리도 편해요.’
익숙한 일이었다. 내가 없어야 편해지는 사람들을 위해 도망치듯 자리를 피해 주는 일, 남들과 같은 선상에 있지 못하고 묘하게 비껴 사선 위에 서 있는 일, 필요할 때만 어쩔 수 없이 내미는 그들의 손길과 눈빛 같은 것들. 분명 궤도 밖을 떠도는 일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울었다. 그 울음은 내가 아직 외로움에 익숙하지 않음을 증명해 보였다. 울면서 한 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 정도 소외감에 이렇게까지 눈물을 흘리는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소외감이라는 것, 외로움이라는 것은 크기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아주 작고 작은 외로움도 결국은 외로움이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건대 그날의 눈물은 그날의 외로움 하나의 결과물이 아닌듯 하다. 쌓이고 쌓이던 외로움이 폭발한 것에 가깝다.
혼자인 것이 편한 것과 외롭지 않은 것은 별개의 일이다. 하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일기의 한 페이지에는 어느 곳에도 있고 싶지 않다고 적혀 있다. 몇 년이나 지난 글이고 구체적인 상황 묘사도 되어 있지 않지만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패딩에 몸을 욱여넣고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유독 추운 날이었다. 바람에 귀가 얼얼했고 가슴 한복판은 뻥 뚫려버린 느낌이었다. 단순히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가슴이 시리다, 그 표현이 가장 적절했다. 발라드 곡에 숱하게 쓰이는 흔한 그 문장이 유독 와닿는 날이었다. 그날 나는 죽도록 외로웠던 것이다. 어느 곳에도 있고 싶지 않다는 말은 사라지고 싶다는 말과 같고 그 말은 곧 너무 외롭다는 말이다. 외로운 사람만이 사라짐을 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것이 외로움인 줄 조차 몰랐다. 그저 아파하기만 했을 뿐이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외로움이 많이 옅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외로움은 불안만큼이나 불쑥불쑥 찾아온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가득히 두고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언제든 전화 한 통, 카톡 한 번이면 달려올 사람들이 있는데도 나는 스스로를 사선 위에 두고 있다.
사선 위에 있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나머지 그것을 습관화해버린 것일까.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마음 깊이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까뒤집어 눈앞에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완전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일까. 사선 위를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익숙해지고 싶다. 하지만 사선 위는 유독 춥다. 추위는 견뎌도 견뎌도 덜 해지지를 않는다. 다시 광안대교 위 택시 안으로 향해본다.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하던 그때로. 그때의 나에게 말을 걸어볼까. 오늘의 너의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야, 외로움은 앞으로 끊이지를 않거든, 하고 최악의 위로를 건네어 볼까. 그때의 나는 과연 울음을 그칠까 아니면 소리 내어 엉엉 울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