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시에 대한 애정 어린 엉터리 기록
‘이상의 시 중 어떤 시가 가장 슬픈가’에 대한 대답은 자꾸 바뀌었다. 가장 먼저 나와 슬픔에 빠진 시는 ‘소영위제’다. 내가 외우는 유일한 시이기도 하다. 전문을 여기에 옮긴다.
‘1
달빛 속에 있는 네 얼골 앞에서 내 얼골은 한 장 얇은 피부가 되여 너를 칭찬하는 내 말씀이 발음하지 아니하고 미닫이를 간즐으는 한숨처럼 동백꽃밭 내음새 지니고 있는 네 머리털 속으로 기여들면서 모심듯키 내 설움을 하나하나 심어가네나
2
진흙밭 헤매일 적에 네 구두 뒤축이 눌러놓은 자욱에 비 나려 가득 고였으니 이는 네 거짓말 네 농담에 한없이 고단한 이 설움을 곡으로 울기 전에 땅에 놓아 하늘에 부어놓는 내 억울한 술잔 네 발자욱이 진흙밭을 헤매이며 헛뜨려 놓음이냐
3
달빛이 내 등에 묻은 거적자욱에 앉으면 내 그림자에는 실고추같은 피가 아믈거리고 대신 혈관에는 달빛에 놀래인 냉수가 방울방울 젖기로니 너는 내 벽돌을 씹어 삼킨 원통하게 배고파 이지러진 헝겊 심장을 들여다보면서 어항이라 하느냐’
내 멋대로의 해석을 붙이자면 이 시는 애정과 열등감이 동시에 투영된 대상에 대한 시일 것이다. 이는 3연의 표현에서 크게 드러난다. 화자는 ‘너’의 얼굴을 비추는 달빛이 내 등을 비추면 자신의 그림자에 피가 도는 동시에 혈관에는 선뜩한 냉수가 맺힌다고 말한다. ‘너’를 보면 그림자에까지 피가 돌 정도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 화자는 선뜩한 열등의 감정도 느끼는 것이다. 나보다 여러모로 아름다운 사람을 볼 때 그저 아름다움만 느끼는 경우는 드문 법이다. 이렇듯 열등감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너’의 앞에 서면 화자의 얼굴은 그저 한 장의 얇은 피부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꽤 굴욕적이다. 심술이 난 화자는 ‘너’를 칭찬하는 말은 삼키고 자신의 서러움의 내용만 모 심듯이 꾹꾹 기록해 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등감의 대상은 언제나 무신경한 법. 화자는 애를 쓰며 이어가고 있는 어떤 일을 ‘너’는 손쉽게 처리하며 의아하다는 듯이 한 마디 툭 내뱉는다. 그로 인해 화자의 고단함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홀로 채우고 있던 술잔마저 민망해진다. 이제 공허감까지 느끼는 화자의 심장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벽돌을 부득부득 씹어 삼켰고 그래서 죽은 것과 다름없는 형상이나 여전히 무신경한 ‘너’는 그런 화자의 심장이 물고기가 살아 숨 쉬는 어항이라고 말한다. 화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열등감이라는 슬픈 감정이 이렇게 아름다운 결과물로 이어지는 경우를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창 세상 모든 것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름답지 못한 것도 아름다운 것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잠깐 기뻤지만 그 일은 아주 소수의 예술가에 의해서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깨닫고 오래 슬펐다. 나는 이때부터 세상 모든 예술가를 존경하는 동시에 질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소영위제’의 화자가 ‘너’에게 그러하듯이.
두 번째로 슬픔에 빠진 시는 ‘지비;어디로갔는지모르는아내’이다. 두 번째 연만 여기에 옮긴다.
‘아내는 정말 조류였든가보다 아내가 그렇게 수척허고 가벼워졌는데도 날지못한것은 그손가락에 낑기웠던 반지때문이다. 오후에는 늘 분을바를때 벽한겹 걸러서 나는 새장을 느낀다 얼마안가서 없어질때까지 그 파르스레한 주둥이로 한번도 쌀알을 쪼으려들지않았다 또 가끔 미닫이를열고 창공을 쳐다보면서도 고흔목소리로 지저귀려들지않았다 아내는 날을줄과 죽을줄이나 알았지 지상에 발자죽을 남기지않았다 비밀한 발을 늘버선신고 남에게 안보이다가 어느날 정말 아내는 없어졌다 그제야 처음 방안에 새똥내음새가 풍기고 날개퍼덕이던 상처가 도배위에 은근하다 헤트러진 깃부스러기를 쓸어모으면서 나는 세상에도 이상스러운것을 얻었다 산탄 아아 아내는 조류이면서 염체 닻과같은쇠를삼켰드라 그리고 주저앉었었드라 산탄은 녹슬었고 솜털내음새도 나고 천근무게드라 아아’
아내는 파르스레한 주둥이로 한 번도 저를 살찌울 밥을 먹지 않았다. 창밖을 쳐다보면서도 노래하지 않았다. 자신의 발자국을 지상에 남길 줄을 몰랐다. 그렇게 아내는 수척해져 갔다. 곧 날아가 버릴 듯이 수척하고 가벼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훨훨 날아가지 못한 것은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아내는 사라지고 그제야 아내가 남긴 고통의 냄새가 느껴진다. 날고 싶어 방구석에서 퍼덕이던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나는 뜬금없이 산탄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녀가 여태 삼키고 있던, 닻과 같이 무거운 쇳덩어리다. 산탄은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우리 엄마는 당신의 이십 대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엄마의 황금기였다던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그 시절의 엄마는 몸이 너무 가벼워서 걸어 다니면 날아갈 것 같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때는 몸무게가 얼마였어,라고 물었을 때 대답으로 돌아온 몸무게와 엄마의 지금 몸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지금의 엄마는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을 받지 못할까. 이 시가 대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를 날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엄마의 손에 낑기워진 반지와 엄마가 뱃속에 삼키고 있는 닻과 같은 책임감들이다. 나는 엄마의 책임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원망해줬으면 할 때가 있다.
가장 최근에 슬픔에 빠진 시는 ‘행로’이다. 전문을 옮긴다.
‘기침이난다. 공기속에공기를힘들여배앝아놓는다. 답답하게걸어가는길이내스토리요 기침해서찍는구두점을 심심한공기가주물러서삭여버린다. 나는한장이나걸어서철로를건너지를적에 그때누가내경로를디디는이가있다. 아픈것이예리한칼날에베어지면서철로와열십자로어울린다. 나는무너지느라고기침을떨어뜨린다. 웃음소리가요란하게나더니 자조하는표정위에독한잉크가끼얹힌다. 기침은사념위에그냥주저앉아서떠든다. 기가탁막힌다.‘
‘행로’는 폐결핵으로 고통받는 이상의 심정을 표현한 시일 것이다. 기침이라는 행위를 ‘공기 속에 공기를 힘들여 뱉어 놓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 깊다. 답답하게 이어지는 삶이라는 스토리 마다마다에 구두점 역할을 하는 것이 기침이라고 한다. 그만큼 폐결핵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기침으로 인한 고통의 순간에 무너지면서 이상은 자조한다. 원래 몸이 약해지면 자신을 자조하게 된다. 그런 자신의 얼굴 위에 끼얹히는 것은 독한 잉크와 같은 객혈이다. 기침은 사념들 위에 떡하니 주저앉는다. 생각하는 일마저 기침이 집어삼키는 것이다. 작가와 사념은 필수 불가결한 관계인데 기침이 그것을 막으며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상의 시에는 직접적인 감정의 표현이 없다. 이상은 자신의 병을 이야기하면서도 ‘슬프다’, ‘아프다’, ‘고통스럽다’와 같은 직접적인 단어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고통은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랫동안 이상을 연구해온 권영민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상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자기 집착을 드러내 보인다.’ 자기 집착을 이어가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자기 연민에 빠지는 순간 글은 엉망이 된다. 이상은 한 번도 그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다. 얼마나 글을 사랑해야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아득해진다. 글을 쓰는 내 손가락이 부끄러워진다.
(이 글에 소개된 이상의 시에는 이해를 돕기 위한 작가 재량의 띄어쓰기와 맞춤법 표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