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시절의 나는 탐정 추리소설을 참 즐겨 읽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추리 소설들로부터 시작해서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책들까지 섭렵하던 시절. 행여나 실수로 뒷장을 넘겨 범인의 정체를 봐 버릴까 봐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며 스릴을 만끽했다. 하나둘씩 주어지는 증거들로 퍼즐 맞추듯 다음을 상상해보고 추리해 보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수학을 사랑하던 중학교 소녀 시절에는 어려운 수학 문제들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임무를 맡았다. 어려운 문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마치 나는 추리소설 속 탐정이 된마냥 문제 속에서 증거들을 찾아보곤 했다. 마침내 퍼즐 조각을(문제를) 맞추면 그 쾌감이 참으로 짜릿했다. 가끔 아주 어려운 문제를 만나 그 자리에서 풀지 못하는 날에는 작은 종이조각에 정성껏 문제를 썼다. 그 작은 종이조각을 내 자는 머리맡 벽에 붙여 놓고 자기 전에 누워서 그 문제를 보면서 잠이 들곤 했다. 자기 전까지 그 문제 안에 숨어진 clue를 찾으며 희열을 느끼는 나를 보고 가족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한 반응들이었다. 문제를 보며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그 답을 생각해 냈을 때 느끼는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수업시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왔던 대학생 시절엔 툭하면 수업을 빠지고 학교 앞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치곤 했다. 수학을 좋아한다고 대학을 수학과로 진학해 놓고선 정작 수업 시간에 나는 교수님이 판서하시는 초록색 칠판에 빨간 공들과 하얀 공들을 상상하며 공들의 운행방향과 각도를 머릿속으로 그리곤 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교문밖으로 달려 나가 머릿속으로만 시뮬레이션해 보던 것들을 쳐 보고 실제로 확인하는 과정이 참 즐거웠었다.
문득 어느새 중년이 되어 버린 나를 본다. 요즘의 나는 여전히 예전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가지고 사는 걸까. “세상 사는데 문제가 없는 게 말이 되냐”, “안 풀리는 게 있는 게 당연한 거지”, “어떻게 다 가지고 사나”, “아이고, 이제 체력이 안 돼”..
나는 마침내 도를 닦은 것일까, 아니면 열정을 잃은 것일까. 어린 시절엔 세상의 모든 문제는 노력하면 풀린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뭣도 모르고 덤빈 것일까? 변명을 만들어 내는 데에 능숙해져 버린 중년의 나에겐 이제 세상의 문제가 부질없이 느껴지는 것일까.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참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어떻게 마음먹을지 나는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