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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en Dec 01. 2020

코로나 일상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우리 동네 마켓은 들어서자마자 바로 입구 쪽으로 초록색 화초들과 빨강 노랑 형형 색깔의 꽃들이 진열되어 있다. 우유랑 과일을 사러 왔지만 눈을 크게 뜨고 줄줄이 놓여 있는 화분들을 재빠르게 스캔해 본다. 초록색 넓적한 잎에 기다란 구멍이 대여섯 개씩 주우욱 쭉 뚫려 있는, 아마존 정글에나 있을 법한 저 식물이 왠지 낯익다. 어젯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본 영상에서 나온 그 식물이다. 이름이 뭐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화분에 붙어 있는 흰색 스티커를 보니 ‘Monstera’라고 쓰여 있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내 손은 몬스테라를 카트에 담았고, 그렇게 나의 식(물) 생활은 시작되었다.


 겨울에 해가 거의 없는 북유럽에서 식물 키우기는 내 생각보다 어려웠다. 물과 영양제는 꼬박꼬박 줄 수 있다고 쳐도 햇빛은 내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여기저기 검색해 보고 알아본 다음 grow light를 사서 설치해 주었다. 하루에 6시간 정도는 이 푸르딩딩한 인공적인 빛 아래에 놓아주는데, 신통방통하게도 이 전보다 더 잘 자라준다. 식물을 이리저리 가지치기도 해 주고, 가지 치며 나온 가지들은 버리지 않고 물에도 꽂아보고 뿌리가 좀 나오면 흙에다가도 심어준다. 이런 꾀나 생산적인 과정들이 나에게 힘을 준다. 1mm라도 자란 게 눈에 보일 때는 어찌나 대견한지 열심히 일한 화초를 쓰다듬어 주고 칭찬의 말을 해 준다.  

grow light를 쬐고 있는 우리 집 식물들

 며칠 후, 여느 때처럼 필요한 우유와 사과, 계란 등을 사고 마트를 좀 더 둘러보는 중에, 이번엔 가루들 칸에 있는 통밀가루가 눈에 띈다. 그 옆에 있는 이스트도 보인다. 이 광경은 왜 또 낯설지가 않은지.. 집에서 간단한 재료로 간단하지 않은 시간을 들여 만든다는 그 발효빵을 나도 한번 만들어 볼까? <아침마다 집에서 갓 구운 빵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던데. 하아, 핸드폰으로 자꾸 이런저런 영상을 보는 게 아니었다. 자기반성의 시간은 정말 찰나에 끝나버리고 나의 쇼핑카트는 통밀가루과 이스트 또한 맞이한다. 나의 베이킹 생활의 시작이었다.


 분명 나는 어제 못 본 예능 클립을 몇 개 정도 보았을 뿐인데, <방 안에서 유##로 한 달에 백만 원 버는 수익구조>에 대한 영상은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코로나로 구직활동에 난항을 겪고 있는 내 신세를 누가 유##에 제보라도 한 건지 놀라울 따름이다. 하루에 만 원도 못 버는 취준생 입장인 나는 눈을 번쩍 뜨고 과연 백만 원을 벌기 위해 어떤 걸 하는 게 좋을지 이것저것 관련 영상을 탐닉한다. 그것들을 보고 들으면서 나는 벌써 수백만 원을 고작 손가락 까딱 몇 번으로 번듯한 뿌듯함을 느낀다. 영상들이 끝나면 성취감은 사르르 사라지고 언택트 시대의 무장한 용사였던 나는 다시 소파에 누워있는, 핸드폰 앞의 무기력한 나로 돌아온다.


 살아오면서 나는 내가 굉장히 특별하고,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게으른 탓에 행동으로 일일이 안 옮겼을 뿐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있는 안타까운 인재라고 말이다. 그러나, 집에 오래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고, 그 시간들에 막상 내가 하는 것들을 보면 이미 대유행이더라.(코로나도 아니고..) 나도 뭐 딱히 대중과 다른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아 가는 시간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다수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짐작을 해 보며 써 보는 나의 코로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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