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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0. 2023

말리지 못할 욕심

당구장에서 ~ 3

큐의 원시 형태는 ‘Y’ 자다. 야외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공놀이를 즐겼기 때문이다. 실내로 들여오면서 실용적으로 조각하여 도구를 만들었으니 ‘T’ 자 모양의 메이스였다. 공을 밀어내면서 적 구를 맞추는 놀이였던 것 같다. 수구가 레일 근처에 있을 때 뭉툭한 메이스로는 타격하기 불편했을 것이다. 거꾸로 돌려서 뾰족한 부분으로 타격한 것이 오늘날 큐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하우스 큐에 사인펜으로 검게 물들이던 시절을 거쳐왔건만 요즘은 아예 큐 자체가 검은색으로 만들어지는 기술력을 자랑하는 세상이다. 한 자루에 수백만 원은 기본이라고 한다. 눈앞에서 천만 원짜리 큐도 볼 수 있었다. 빗자루몽둥이가 뭣이라고 그렇게 비쌀까. 둥글둥글 뾰족뾰족 각양각색의 문양을 쳐다보니 예쁘긴 예뻤다. 한 번 쳐 보았더니 돈값처럼 타구감도 좋았다. 한 손가락으로 쳐도 당구대를 두어 바퀴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내게는 과분함이라 건네줘야만 했다.


유럽산 큐가 한국에 둥지 틀 무렵 그때부터 큐 열풍이 불었던 것 같다. 상업 사회가 변모한 것이다. 비싼 만큼 세련된 손재주로 팁을 탈부착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당시는 생활체육 당구가 활성화되던 시절이었으며 홈페이지에는 큐를 사고파는 장터도 있을 정도였다. 큐가 넘쳐나자 중고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까지 생겨났다. “큐 팔이”라는 은어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요즘도 중고 큐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고파는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자작 마니아들도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지역마다 큐 공방까지 생겨날 정도로 수리도 용이해졌다.


큐에 목메는 이유는 하우스 큐를 사용하는 불편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시욕과 잘 치고 싶은 욕심이 큰 것 같다. 하나로 합해지는 욕구이기도 하다. 종류도 워낙 많아서 고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상대와 하대를 분리해서 팔기도 하니 범위가 더 커져 버렸다. 주로 잘 맞을 것 같은 예감으로 큐 시장을 기웃거린다. 가격을 들여다보며 실용이냐 디자인이냐를 두고서 나와의 고민이 시작된다. 이때 큐 회사가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준다. 우승 가능성 있는 선수에게 미리 큐를 후원함으로써 충동구매가 이뤄지는 것이다.


예감은 적중할 때가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똑같은 큐도 품고 있는 느낌은 저마다 고유의 색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장인의 숨결이 들어있는 소량의 자작 큐도 마찬가지다. 운 좋게 내 스트로크와 일치하는 무게감을 느낀다면 예감이 적중하게 된다. 아니라면 큐 시장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다. 장터는 듣도 보도 못한 용어로 화려하게 매물을 장식하고 있다. 누가 이렇게 혹하는 말들을 꾸며내는지 새삼스러움에 웃음이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거래는 항상 뒷말이 많은 것 같다.


평생 내 큐가 되기란 쉽지 않다. 개개인의 지점에 맞춰 스트로크와 생각의 차이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곧바로 무게감과 직결되기에 그 무엇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세한 오차범위를 잡아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큐에 눈독 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맛에 큐를 바꾸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오직 디자인으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큐 회사는 이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도 우승자의 큐가 새 상품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동호인들의 큐가 소리소문 없이 바뀌어져 있다.


요즘 입맛이 없어 예감 하나 먹어보려는데 고민이 많다. 비싸다고 다 맛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싸면 느낌부터 감칠맛이 없다. ‘큐 뭐 별 게 있나.’ 시건방진 생각으로 여태껏 즐겨왔건만 좀 더 잘 치고 싶은 욕심이 세속으로 눈 돌리게 만든다. 나 또한 속물인가 보다. 막상 큐를 바꿔보면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드니 말이다. 슬럼프 때마다 겪는 환상은 말리지 못할 욕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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