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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4. 2023

흔들리는 우정

당구장에서 ~ 19

풀어낼 수 있는 포지션을 놓쳐버렸다. 일부러 빠트리기도 힘든 형태를 어이없이 실수하다니. 타석에서 내려와 영상으로 쳐다보니 헛웃음까지 나온다. 큐를 맛깔나게 비틀어버린 것이었다. 원하는 두께를 벗어났으니 수구가 방향을 잃고 헤맬 수밖에.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좋지 않은 습관이 굳어버린 느낌이다. 성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고 쳐다볼수록 진지함과는 동떨어져 있다.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해소해야 할 터인데. 당구쟁이의 고민을 누구에게 하소연해 볼까나.


큐를 곧게 내민다는 것은 초보 시절부터 지켜온 당구와의 약속이자 자신과의 신념이다. 잘 치려는 노력으로 보답한다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비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도리어 안간힘도 팔에 무게를 보태고 앉았으니 기막힐 노릇이다. 좌우로 비트는 것도 모자라 하늘로 젖혀 올리는 행위까지 한다. 허공에 당구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맘을 몰라주는 것일까. 간혹 맥시멈으로 비틀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상황이 곧게 뻗는 것으로 해결이 다 된다. 잘 알면서도 필요 이상의 힘이 가미되니 이 일을 어쩔꼬.


큐를 쥐고 있는 손에서 실수를 범할 리는 없다. 걸치는 역할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고로 손에 굳은살이 베일 정도로 빡빡하게 쥐는 자세는 불편한 행동이 된다. 손가락은 큐를 바닥에 떨구지 않거나 높게 치솟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손가락 자체가 흔들림의 범위를 허용하기에 마음으로 조종하여 곧게 내미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올곧은 길은 이 방향이다.’라는 이정표의 역할인 셈이다.


큐 잡는 뒷손이 타격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큐를 비트는 행위도 이 녀석 때문이다. 길이가 다른 저마다의 손가락 마디마디와 좌우로 틀어지는 팔목 때문일 수 있겠지만 고수의 화려한 스트로크를 보는 순간 과학이 무시되기도 한다. 경기가 풀리지 않는 날이면 팔이며 어깨는 물론이며 온몸까지 저릴 때도 있다.


예비 스트로크 동작까지는 일자로 유연하게 움직인다. 거기까지는 대부분 같은 패턴이며 다들 세계챔피언과 똑같은 모습이다. 수구를 맞추는 순간 비틀림이 보인다면 하수임을 자처하는 행위다. 의심의 크기만큼 생성된 힘의 무게가 팔에 충전되어 굳어져 버린 팔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창피할 정도로 무의미한 행동임을 잘 알면서도 왜 맨날 똑같은 행동이 되풀이될까. 이 모습이 마치 흔들리는 우정을 보는 듯하다. 나와 너를(포지션을) 믿지 못해 우정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힘을 뺀다는 것은 비단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와 지휘를 하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서예가나 화가가 붓을 쥔 손놀림에서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완숙하게 기교를 펼치는 장인들은 불필요한 힘의 요소를 없애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공사판에서 등짐을 메거나 삽질하는 것도 최대한 힘을 빼는 요령을 터득했기에 가능한 일이 된다.


딱 필요한 만큼의 힘. 큐를 잡는 힘 하나에 의지해서 곧게 뻗으면 되는 단순함이 당구 치는 원리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 왜 의도하지 않은 복잡성이 가미되는지. 힘을 빼야 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실패하는 순간 뻐근한 기운이 감지된다. 동시에 무거워지는 내 팔과 어깨, 회복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름의 결론은 예부터 내려오는 구전의 방식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달걀을 움켜쥐는 느낌으로 타격하는 방법이다. 큐와 볼이 부딪치는 순간 특정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 깨질 확률이 높다. 눈을 감고서 흉내 내어 본다. 힘을 주면 분명 깨져버린다. 균등하게 나누어 마디마디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잡함을 던져버리고 그냥 힘만 빼면 깨질 염려가 없다. 소리조차 맑게 들리며 오래도록 경기해도 피곤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것 참.


결국 불필요한 힘을 얼마만큼 빼느냐가 관건이다. 어쩌면 당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잘 고쳐지지 않는 케케묵은 습관과 나를 다독이지 못한 마음가짐이 실수의 원인이란 것도 잘 안다. 당구와 지켜온 약속을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흔들리는 우정을 잊어버리자. 변치 않는 우정을 위하여 깨질 수 없는 달걀을 간직하고 싶은 맘 누구나의 희망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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