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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4. 2023

슬럼프

당구장에서 ~ 20

“요즘 왜 이렇게 공이 안 맞을까.” 게임을 끝낸 후 함께 쳤던 동생뻘의 푸념 섞인 소리에 귀가 가렵다. 화난 눈치를 보아하니 자존심도 살짝 구겨진 모습이다. 계속 진다고 한다. 혼잣말처럼 하고 있지만 내게 답을 요구하는 눈치다. 나도 잘 못 친 터라 지긋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물어보면 한마디 해줘야 하나 고민이 든다. 뻔한 답을 들고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수라도 내 점수대에 맞는 에버리지로 판가름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너무 터무니없었다. 자기 점수의 반의반도 못 쳤으니 나 같아도 화 날만 했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지만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에 딱히 들어맞는 조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구는 단계별 지점마다 복잡함을 드러내기에 그때마다 몸살을 앓아야 한다. 좀 더 오르다 보면 기량 이외 것들이 머릿속을 죄어 올 때도 있다.


포지션을 풀어내는 과정은 다양한 색깔을 드러낸다. 개개인의 지점에 따라서 쉽게 맞춰낼 수 있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감히 엄두를 못 낼 때도 있다. 주로 볼 다루는 스타일에 따라서 실수할 확률을 드러내며 그 영역의 크기만큼 지점에 비례하게 된다. 슬럼프는 혼자서 끙끙대봐야 제자리서 맴돌 뿐이다. 파란불을 보고도 건너지 못하는 아쉬움은 쳐다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따져 묻는다면 결국 스트로크 때문이다. 고수는 단순하게 설명한다지만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이해되는 난해함이 숨어있다. 흔히 말하는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딱 이 짝인 셈이다. 별거 없는 인생이라지만 살다 보면 참 별 게 참 많은 인생이다. 생긴 대로 살면 된다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며 되받아치는 말장난을 당구에서 하게 될 줄이야. 당구나 사는 것이나 참 똑같다. 세상 모든 스포츠가 삶의 진리와 교훈을 안겨준다더니 그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케 한다.


슬럼프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스트로크 + 머리 = 실력이라는 전제하에 평소와 다름을 느낀다는 것은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뜻이다. 복잡한 생각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치는 모습에서 나와 다른 새로움의 발견이다. 똑같은 포지션을 두고서 당 점과 강약, 큐를 내미는 길이와 자세를 달리하는 모습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주로 고수들이 득점하는 장면에서 동화될 때가 많으며 아주 우연한 시점에 찾아오는 것 같다. 내 장점이 약점으로 인식되는 오류를 범할 때도 있지만 이 또한 내공이 다져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맘 편하다.


새로움의 발견은 마치 바늘구멍 사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수구는 나비처럼 날아서 적 구의 머리맡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이내 다음 목적구를 향해 머뭇거림 없이 쳐 오른다. 한결같은 동작이지만 매 순간이 역동적이다. 몽환적 표현이 잘 어울리기도 한 그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빨리 오라며 끌어당기지만, 의심의 본능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은 호기심으로 충족되어 아무래도 가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게 된다.


빨리 탈출하는 길은 관문을 여는 수밖에 없다. 뒤로 갈 수도 없고 멈추지도 못한다. 다행히 막다른 길은 출입문이 활짝 열려있다. 단 입장료를 계산해야(지점을 높여야~) 문을 열어준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언젠가는 들어가야 할 관문이다. 지금이냐, 나중이냐. 너무 잘 될 때와 잘 맞지 않을 때 둘 중 하나의 시점을 택해야 한다. 물론 개개인의 지점마다 적정한 에버리지 산정으로 승급하는 자연스러움이 있지만 마냥 옳다고는 볼 수 없다. 모자란 실력을 집중력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잘 치고 싶고 고수가 되고 싶다. 남들이 지점을 들먹이기 전에 올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짜다는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내 당구를 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럼프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실력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지금이 그렇다. 근질거리던 입이 포문을 터트리고 말았다. 곧장 후회감이 몰려왔지만 수습할 수 없다. 스스로 깨우쳐야 할 일을 참견하게 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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