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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1. 2023

소리 공장

당구장에서 ~ 6

고갱
고흐


고흐와 고갱의 작품 중 당구대가 있는 그림 두 점이다. 배경은 남프랑스 아를. 고흐는 카페 주인을 중심으로 고립된 손님들을 연출하려 했고 고상한 모습을 담은 마담 ‘지누’의 자화상을 별도로 여러 점 남겼다. 고갱은 고립과 사교의 개념을 혼합하여 그 중심에 큼지막이 마담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미술계 평론은 두 거장의 좋지 않은 감정으로 말미암아 마담의 묘사 범위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관심은 오로지 당구뿐이다.


그림 속 당구대는 목수들이 손으로 직접 빚은 작품으로 발통은 로구로식이다. 지금은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소싯적 당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형태이기도 하다. 얼핏 봐도 사람 크기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초기 카페에 보급되었던 소형 당구대로 추정된다. 위로는 녹색의 잔디가 깔려있고 흰색 공 두 개와 붉은색 공 한 개가 놓여있다. 당구대에 포켓이 붙어 있지 않을까 유심히 살펴보지만 찾아지지 않는다. *캐롬 당구대다.


고흐의 그림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측은한 모습이다. 당시 카페는 술에 취해 귀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출입하여 밤을 새우곤 했단다. 그래서인지 다들 지루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눈치다. 술잔이 놓여있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없다. 막 나간 손님을 배웅한 듯 주인의 포스가 어색해 보인다. 시계를 쳐다보니 바늘은 자정이 넘어가고.


고흐와 달리 고갱은 사람들의 대화를 더했다. 네 명이 진지하게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지만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 모른다. 옆 테이블 손님 중 한 명은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한 사람은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자면서 대화를 엿듣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구대 밑 고양이도 뭔가를 유심히 듣고 있는 눈치다. 마담의 의미심장한 곁눈질은 무엇을 뜻할까. 동떨어져 있는 당구공이 수구(手球)라면 50-30=20으로 겨냥할 수 있는 빈 쿠션이다. 눈 감고도 칠 수 있는 포지션을 내버려 두고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일까.


유럽 혁명의 발화점 프랑스에서 고갱이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유주의 언론인이며 외할머니는 혁명운동의 토대에 도움을 준 사회주의 작가이자 활동가로 전해지고 있다. 방수포 판매원, 통역사를 거쳐 주식 중개인이 되면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폴 고갱. 이후 프랑스어 교사 · 파나마 운하 건설 노동자 ·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오는 동안 고흐 형의 권유로 아를에서 고흐와 함께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고갱의 집안을 배경으로 그림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확산한 유럽 혁명의 격변기를 지켜본 폴 고갱. ‘혁명의 소리’를 그림으로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혁명가들이 선술집에 모여서 진중한 대화를 이어간다. 옆에서 졸고 있는 사람은 첩자일 수도 있다. 원근법으로 꽉 찬 마담의 얼굴에서 중요한 인물임이 엿보인다. 마담이 정보를 흘렸는지 ·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목표를 성취했다는 표정이다. 반만 채워진 술잔과 가벼운 미소가 이를 증명해주려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선술집은 혁명의 교두보 역할을 한 소리 공장이었다. 사람들은 소리를 담고 전달하기 위해 밤낮없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주로 카페에서 임금을 받았다고 하니 즉석 해서 술과 당구로 마음도 달래며 내일을 설계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도 하며 시위 계획을 철저히 도모했으리라. 일찍부터 선술집 문화가 발달했기에 빠른 정보력이 계급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않았을까.




* 주머니가 없는 당구대에서 수구 두 개와 적구 두 개(또는 적구 한 개)를 가지고 경기하는 방식이다. 직선 레일(사구) · 보클라인(난이도 높은 사구) · 원쿠션 · 쓰리쿠션 · 아티스틱(예술구) 종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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