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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전쟁

by 당구와 인간

텃밭에 개미들이 열심히 돌아다닌다. 불개미다. 전에 없던 녀석들인데 어디서 이곳까지 찾아왔을까. 당당하게 뛰어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는 모양새다. 왔다 갔다 더듬이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 먹잇감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것 같다. - 힘도 세다. 엉거주춤 제 몸집보다 더 큰 먹이를 끌고 다니기도 한다. 보다 못해 뒤에서 밀어주는 녀석도 있다. 말로만 듣던 개미사회의 협동정신이다. 식물의 병충해를 방제한다지만 쏘이면 따끔하게 부어올라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해넘기기를 반복하다 보니 녀석들도 식구가 늘어만 간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나지막이 쌓은 돌 담 틈새로 무리들의 횡열이 끊이지 않는다. 돌 하나를 걷어내자 새하얀 개미알이 어림잡아 수백 개씩 드러난다. '아이고 미안타.' 얼른 덮어주며 토닥거려 보지만 여전히 탐탁지 않다. 무리 지어 어딜 그리 바삐 가는 것일까, 돋보기로 추적하다가 이내 포기해 버린다. 호미질하다가도 툭 여기저기 툭툭 천지가 개미밭으로 변해버렸다. 텃밭에 두더지가 서식하는 것도 개미 때문인 것 같았다. 온통 파헤치는 통에 작물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의례히 행사가 되어 버렸다. 텃밭에 잡초 뽑는 날이면 어김없이 몸을 물어 버린다. 노크도 없이 침입하여 화를 내는 형국이다. 이 일을 어쩔꼬. 스님들은 개미를 피해 조심스레 걷는다지만 툭하면 살을 물어버리는 통에 옷 털어내는 일도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해마다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지구의 지배자를 도대체 어떡하란 말인가. 자연 공진화의 일원이라지만 내게는 해당 사항이 못 되는 것 같다.


살생을 저지르기로 마음먹었다. 붕산을 사다가 곳곳에 뿌려버렸다. 온라인에서 얻은 정보로 설탕을 섞어보지만 입질조차 하지 않는다. 마침 약국에 개미퇴치 상품이 비치되어 있길래 얼른 사다가 길목마다 설치해 보았다. 며칠이 지났건만 습기 먹은 채 그대로다. 이 녀석들 지능이 뛰어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난감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직접 살포하기로 마음먹었다. 살충제 스프레이로 개미가 보이는 곳마다 뿌려댔다. 나자빠지는 모습에 가슴 아리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보냈더니 또 다른 복병이 숨어 있었다. 메뚜기다. 포도 먹고 나면 날벌레가 생기듯 배추 심으니 녀석들이 더 많이 출현한다. 배추 속에 숨어있는 박테리아가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일까, 궁금하지만 과학자에게 물어도 잘 모른다 할 판이다. 하기사 그걸 알면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밝혀냈을 터다. 아무튼 녀석들도 잡아야만 했다. 배춧잎을 갉아먹는 통에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을 피하더래도 새나 개구리에게 결국 먹혀버리겠지만.


제법 쌀쌀한 가을이 찾아왔다. 개미들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땅 속 어딘가에 무리들이 모여 있을 테다. 금쪽같은 새끼들을 키우면서 말이다. 배추가 잘 자라고 있나 살피던 중 오늘도 메뚜기 부부 한 쌍을 잡았다. 이제 한 며칠 더 잡으면 사라지겠지. 두더지가 헤집은 자국이 보인다. 들쥐 구멍도 발견했다. 여름이면 이슬 먹은 달팽이가 엉기적엉기적, 가을이면 메뚜기들이 폴짝폴짝, 개구리는 세상모르게 겨울잠을 자고 있을 텐데. 따뜻하면 개미들도 기지개를 켜고 슬며시 고개 내밀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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