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식은 텃밭 매화가 해마다 잊지 않는다. 주위는 온통 눈록색인데 녀석은 뭣이 그리 급한지 꽃망울을 툭하니 터트리고 앉았다. 하얀 얼굴 보란 듯이 내밀기에 안 쳐다볼 수도 없다. 가까이서 보니 예쁘긴 예쁘다. 혼자 놀기 심심해서일까 잠자는 친구들을 하나둘씩 불러낸다. 옆에 곤히 자던 자두 꽃 깨어나자마자 시끄럽다며 화를 내지만 화창함에 금세 기분이 풀어진다. 연이어 복숭아꽃 피어나고 앵두꽃도 질세라 꽃망울을 터트리기 바쁜 연초록 봄이다.
개중에 꽃망울을 셀 수 없이 터트리는 녀석이 있다. 포도도 아닌 것이 조막만 한 알갱이가 가지마다 촘촘하다. 가리늦가 피우는 것이 미안해서일까, 가장 빠른 결실 맺으며 주위 녹 빛을 가리기 바쁘다. 여묾 모습 빨갛다 못해 진붉고 농염하다. 손이 절로 간다. 복숭아며 자두며 매실이며 애타게 기다리다 지친 맘 달래주려 서둘렀나 보다.
아장아장 조카 녀석 ‘앵두’ ‘앵두’ 노래 부르길래 심어놓은 앵두나무. 간절함이 통했는지 이듬해부터 열매가 한 광주리다. ‘앵두 따러가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예쁜 눈망울, 동심이란 이런 것일까. 한주먹씩 쥐고 입 속에서 오물거리던 때가 엊그제인데 이제 다 컸다고 쳐다보지 않는다.
앵두는 해마다 풍년이다. 희붉은 알맹이를 바라보니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 많은 것을 어쩔꼬. 오다가다 익은 녀석 한 알씩 한 알씩 따먹어본다. 새콤하다가도 달콤하고 달콤하다가도 상큼한 이 맛. 송이송이 따먹는 그 맛 남이 볼까 조심스럽다. 아이들의 장난 같아서다.
어릴 적 친구들과 산딸기를 따 먹을 때도 그랬다. 우거진 산딸기 숲을 헤치며 가시를 피해 하나씩 하나씩 빼먹던 모습이 새록새록. 그 맛난 열매를 독차지하려 산딸기 밭에 항상 뱀이 도사린다던 그 친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한 움큼 따다 늙은 엄니 손에 쥐어주니 얼굴에 함박꽃 가득하다. ‘애들 주라. 뭐 하러 가져왔냐.’하시지만 드시고 싶은 눈치가 역 역하다. 한 알 슬그머니 입 속에 넣으시고는 ‘달다’는 외마디와 함께 리모컨을 만지작만지작. 혹시 내 맘 같은 동심을 느끼시려나 얼른 자리 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