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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6. 2023

스포츠 노동자

당구장에서 ~ 29

봉건시대 예속된 피지배계급층 노예 · 농노 · 노비 · 머슴. 오늘날 상업 사회에서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개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일의 형태는 머리를 사용하는 ‘품팔이’와 몸을 사용하는 ‘발품 팔이’로 양분된다. 머리와 몸을 함께 사용하는 ‘양품 팔이’는 공통적이며 어느 한쪽의 비중이 클수록 수입이 늘어나게 된다. 때로는 ‘발품 팔이’를 넘어 ‘뼈 품팔이’를 하면서까지 상업 사회의 성장을 돕지만 먼 훗날의 골병으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든 일을 피하고 싶지만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어쨌든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세상이 돌아가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또 싸워야만 하는 세상살이. 끊임없이 이겨야 하는 무한경쟁의 원동력은 어디서 샘솟는 것일까. 당구를 추적하다 보니 고무 쿠션 진화 과정에서 은밀한 단서를 발견해 버렸다. 기원전 메소아메리카의 “올멕” 문명이다. 중앙집권화의 위계질서에서 고무공을 이용하여 종교의식이 잔인하게 행해졌다고 한다. 다른 문명에서도 구체를 이용한 숭배의식을 엿볼 수 있지만 경쟁의 흔적 때문에 좀 더 솔깃하게 다가왔다. 공놀이로 문명화를 추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고대 올림픽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었다. 예배 형태였다고 한다. 다른 신들의 헌신으로 제우스를 기리기 위한 신성한 숭배의식이었다. 의식은 집단에서 자부심과 우상화를 낳고 자기 신화로 표현되었던 것이었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 사람들이 꽉 차 있다. 검투사들은 피 흘리고 있고 노동자들의 함성은 커져만 간다. 목숨까지 걸어야만 했던 노예들, 이들은 스포츠 노동자가 아닐까.  


임금노동자의 정의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받아서 그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스포츠 노동자도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받아서 생활하기는 일반 노동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주된 목적은 개인의 힘 또는 단합된 힘의 결과가 국가와 국가 간의 승리로 이어지는 단순함이다. 이 과정에서 민족의 힘이 더해져 복잡함을 그려나가게 된다.


극복과 인내 · 노력과 끈기의 의지력은 메달과 상패 · 상금과 연금으로 보상받는다. 조건은 명예와 충성을 맹세케 하는 국수주의 이념이다. 생계를 보장받는 것은 물론이며 등급을 나누어서 차별을 유도하기도 한다. 자신의 감동으로 이어진 성취감은 또다시 이기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고 국가는 롤 모델(role model)을 그려냄과 동시에 부를 던져주는 노고를 잊지 않는다.


나약한 원동력은 경쟁의 원천을 잃게 되어 국가와 자본을 소멸시키는 행위와도 같다. 국가는 패자에게 감동을 승화시키는 퍼포먼스로 인간의 감정을 다스리려 한다. 국가의 민낯이지만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더해서 철학에 협동을 내포시키며 나아가서는 분배의 과정을 밟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개별 국가마다 스포츠에 의존하는 생존을 위한 의무감의 차이는 그 크기에 따라서 눈물의 양이 조절되는 것 같다.


상업 사회의 성장으로 이제 좀 살만하다 싶었을까, 스포츠 ‘발품 팔이’의 영역 또한 커져 버렸다. 노예로 일군 비인간적 자본의 승리를 감추려 스포츠를 성장시켰는지, 더는 국가에 이용당하기 싫었던 노예근성이 폭발해서인지, 오직 국가의 승리만을 위한 감동에서 일반 노동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인위적 성장을 구축하게 된 것 같다. 아마도 생산 활동을 위한 활력소가 필요했으리라.


스포츠 노동자는 ‘아주 특별한 발품 팔이’다. 사회는 이들을 운동선수라고 지칭하며 일찍부터 직업으로 결정짓고 길들이는 과정을 밟게 만든다. 빠르게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도자의 차출로 기회를 부여받는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기도 하며 부모의 강요로 만들어질 때도 있다. 주로 수입이 많은 야구 · 축구 · 골프에 관심을 두지만 신체적 조건과 금전의 여유가 있어야 하기에 누구에게나 해당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벌이가 시원찮은 종목에 뛰어든다는 것은 두려운 용기로서 탐탁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일반 노동자가 취미로 스포츠를 하는 행위는 건강과 사교를 위한 여가 활동이 된다.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고 직업이 취미로 전환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든 직업이 되는 그 순간부터는 노동자의 자격에 합류하게 된다. 스포츠 노동자가 되는 순간부터 반복된 훈련으로 땀 흘리는 수고를 마다해서는 안된다. 잠재된 능력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끄집어내어 내 것으로 소화시켜 버린 이들은 평안한 미래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후를 걱정해야 할 선수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이 들어 젊은 시절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스포츠가 있으니 바로 당구가 이에 해당된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처럼 당구도 60부터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 같다. 열매가 익어야 맛이 있듯이 오랜 구력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밟는다면 아름다움이 더해진다는 생각이다.  당구뿐만 아닐 것이다. 구력은 삶의 내공에 포함되어 삶 속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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