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친구집에서 본의 아니게 돌구경을 해버렸다. 장롱 속에서 수건으로 감싼 뭉치를 조심스레 들고 온다. 1억에 거래될 뻔했다며 부친께서 아끼는 물건이라고 한다. 수문석이라는데 빙글빙글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내 눈엔 짱돌이었다. 집마당은 돌천지였다. 전부 돈이 되는 돌이라며 요즘은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얼마 전 구입 한 오토바이도 돌멩이를 팔아서 구입했다나.
강이나 바닷가에 널려 있는 돌을 주워 오기만 하면 돈이 된다니. '돌이 돈이다.' 어린 호기심은 단지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돌세상을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수석 있는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길바닥에 널려있는 돌멩이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가까운 바닷가를 찾았지만 머릿속 이미지의 돌멩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인들과 친척들에게 선물 받은 수석으로 마음 달래 보지만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내손으로 탐석 하고픈 욕심 때문이다. 그렇게 잊히려나 싶더니 세상은 온라인 창을 활짝 열어 준다. 카페와 블로그에 정신없이 올라오는 돌사진들. 신세계다. 좌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들. 사고파는 사람들. 탐석기행기. 전국의 탐석지. 수석대전. 내 돌 한 점 없지만 나도 모르게 준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다행인지, 거제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매일같이 바다로 향했다. 돌 한 점 취하고 안 하고를 떠나 도심의 찌든 내를 털어버리고픈 맘이 컸다. 돌을 돈으로 보는 허상도 이미 버려 버린 터라 맘 놓고 바다를 마셔버렸다. 길도 낯설어 자그마한 돌밭 한 곳만 다녔더랬다. 특이한 게 매일 오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돌멩이가 나를 반긴다.
신비로운 호기심은 또 다른 바다를 찾게 만들었다. 지도를 펼쳐보니 생각보다 많은 돌밭이 보인다. 물 때맞춰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절벽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큰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였다. 그러길 일 년 가까이, 돌밭이 회전한다는 것을 알았다. 파도가 쳐 오름과 동시에 바닥의 돌멩이가 바다로 향한다. 대략 오 년을 그렇게 다녔더니 바닷속이 궁금해졌다. 아마도 그 해 여름은 물속에서 살았나 보다. 잠수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바닷속 돌멩이는 뻘 속에 숨어서인지 색 하나 없는 까만 모습이었다. 번뜩 광합성이 떠올랐다. '빛' 햇빛을 보지 못해 칼라를 품지 못한다는 혼자만의 추론이 시작됐다. 돌밭에서 돌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탐석은 뒷전이 되다시피 했다. 붉은색 너는 무엇이길래 이 속에 숨어 있는 거니. 하얀색 너는 왜 홀로 뽐내고 있을까. 새까만 차돌멩이 너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광합성을 하는 돌멩이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햇빛을 품어 산소를 내뿜다니. 바다가 왜 생겨났는지, 나무가 왜 자라나는지, 왜 비가 오는지, 왜 바람이 부는지, 왜 달이 저 멀리 달아났는지, 왜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왔는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지구와 태양의 수명도 예측해 버리며 자연의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지만 세포 결합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생성과정은 아직 밝혀내지 못한다고 한다.
차돌멩이도 광합성을 한다면 상상의 폭이 커진다. 거제도의 바다 돌멩이는 다양한 석질을 자랑한다. 그 속에 여러 물질이 혼합되어 색을 드러내지만 속은 알 수 없다. 저마다의 색 중 연둣빛이 가장 눈에 띄며 타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색이다. 이런 확신은 수석 전문가들에게만 가능하다. 석질과 칼라를 확인하면 단번에 산지를 맞춰내는 재주를 지닌다. 각 지역의 광물과 그 속에서 또는 주위에서 기생하는 미생물의 물리를 탐구해 보면 실마리를 찾을 텐데. 혼자만의 고민 속에 과학자의 연구결과를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빅뱅 물 한 모금 머금으며 오늘도 바다를 향한다. 그저 자연과 하나 되어 우주가 내린 선물 파도가 빚어낸 걸작품 차돌멩이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저 멀리 낮달이 보인다. 달이 멀어지지 않았다면 돌멩이가 내 곁에서 숨 쉬지 않았으리라. 나란 존재도 물론 없었겠지. 뒤로는 우거진 솔 숲 박테리아의 꿈틀거림 소리가 들려온다. 자연의 위대함에 젖어드는 황홀함은 지루할새 없다. 오늘도 사유의 바다를 헤엄치는 내 모습.
* 오래전 다큐에서 보던 "스트로마톨라이트" 호주에만 있는 줄 알았다. 최근 국내 다큐 프로그램에서 소청도의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