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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7. 2023

후다닥 당구문화

당구장에서 ~ 35

후다닥! 후다닥! 당구장을 출입한 후 손님들의 발걸음 소리다. 출입구를 열자마자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 비어있는 당구대를 확인하자마자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사구 주세요.” “삼구 주세요.”라며 외치고 있다. 경기 시작 버튼을 누르면서부터 잠잠해지나 싶더니 이내 총총거리기 시작한다. 후다닥 타석에 들어서서 후다닥 쳐 버리고는 후다닥 자리에 앉는다. 상대 선수 또한 득점 실패를 확인하자마자 벌떡 일어서고는 후다닥 타석에 들어선다. 뭣이 그리도 급할까, 한마디로 ‘후다닥 당구문화’다.


이게 다 10분당 요금제도에서 비롯된다.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당구가 세계의 중심이 된 배경이기 때문이다. “패자는 카운터로~” 웃고픈 당구장의 표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업주는 백 원 단위까지 끊으며 악착같이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다. 예전에는 일시 정지 버튼조차 없었다. 당구 치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날아갔다 와야 했다. 철저한 상술로 다져진 족쇄 때문에 상업이 발전했다고 봐야 하는 서글픈 당구장의 현주소.


그나마 대대 활성화로 전자점수판이 도입되면서부터 조금이나마 변화를 불러올 수 있었다. 일시 정지 버튼도 생겨났다. 타석에 들어선 후 제한시간 알림 기능도 있다. 결제도 동전이 사라지고 천 원 단위로 끊게 되었으니 백 원짜리 장사 수준도 벗어나버린 셈이다. 느긋한 분위기에 기량을 다져보면 좋으련만 요금제에 젖어버린 습관 때문인지 후다닥 거리는 모습은 여전하다.


공식시합에서도 마찬가지다. 규정시간을 지키려는 모습이 어색하리만큼 구경꾼들마저 조급함을 느끼고 있다. 치는 사람은 난감하고 보는 사람은 답답해한다. 빨리 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을 살살 달래야 하는데 두들겨 패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촌극까지 펼쳐진 적도 있었다. 빨리빨리 근성이 아이티 시장을 선도했다고 믿었을까. 축구나 농구의 흥행을 비유하며 “경기 속도를 높여 눈을 뗄 수 없는 경기를 만든다.”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공격시간을 줄여버리자 선수들이 뜀박질을 한다. 한 번으로 그치길 천만다행이었다.


해마다 개최되는 각종 대회에서 서유럽 선수들이 상금을 몰아가고 있다. 경기 끝날 때마다 서유럽으로 옮겨지는 상금을 가늠하며 네티즌들은 빈정대기 바쁘다. 보다 못해 게임 방식을 변경하여(세트제) 상금을 나누려 한다지만 독식의 여운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만 오천여 개의 당구장에서 셀 수 없는 동호인들을 자랑하는 한국의 당구문화. 동급의 장비를 가장 많이 갖추고도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유럽이 원조라는 이유로 핑계의 넋두리를 감추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물론 기량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유럽선수들이 힘 조절로 다음 포지션을 손쉽게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누구나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끼리의 얘기로 신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거다. 눈감고 칠 포지션이래도 쉽게 타격하는 법이 없다. 점수 차가 벌어져도 포기할 줄 모르며 마술같이 따라잡는다.

 

분명 나도 칠 수 있는 포지션을 치고 있을 뿐인데 왜 그들은 맞춰내고 나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놓치고 나니 아차 싶다. 한 번만 더 생각하면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숙제였다. 기량의 발전은 약간의 여유로움에서 시작되는 간절함이 아닐까. 단 몇 초라도 좋다.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가져보는 거다. 오랜 생각이지만 지금의 요금 제도를 과감하게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본의 흐름으로 문화 현상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10분당 요금 제도와 입장식 요금 제도를 적절히 병행하고는 있어 보이는데.


오늘도 공치러 간다. 순번이 넘어감과 동시에 점수판의 시간이 움직이고 있다. 40초 안에만 치면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1 적구를 가상의 지점까지 보낼 방법을 생각하는 순간 뒤통수가 뜨끔거린다. 시간을 쳐다보니 아직 20초씩이나 남아있다. 상대 선수는 속으로 그럴지도 모른다. ‘빨리 칠 생각은 않고 시계는 왜 쳐다보는 거냐.’라고 말이다. 함부로 시계 보는 일도 눈치 볼 상황이 되는 후다닥 당구문화. 후다닥!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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