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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7. 2023

이긴다는 것

당구장에서 ~ 32

요즘은 당구 치다가도 멍해지기 일쑤다. 나이 때문일까. 잘 치려 집중해도 모자란 판에 잡생각만 잔뜩 짊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잠잠해지면 흥미를 찾는 것이 당구라지만 이번 권태기는 예전과 다른 느낌이다. 따라갈 의욕이 없는가 하면 엇비슷한 상황에서 기회를 던져줄 때도 없잖다. 그러다 상대선수의 의지가 꺾일 때면 내면의 이중성이 냉정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나쁜 버릇이 맞다. 꼭 이겨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를 괴롭히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


공식 시합은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을까 참가해 보지만 마찬가지다. 졌음에도 억지로 미소 지으려는 여유가 불편하게 다가온다. 읽히는 표정 또한 썩 좋지 않다는 것도 서로가 잘 안다. 이기면 기분이 좋고 지려고 마음먹었음에도 지고 나면 기분 나쁜 이겨 먹기 놀이. 스포츠이기에 그나마 다음을 기약한다지만 생존의 승부는 성격이 다르다. 한 번 자빠지면 복구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히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긴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버린 본능이다. 어른들의 주입식 교육도 이겨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참 잘했어요.” 칭찬받으며 성장한 유아기는 일등과 꼴찌라는 개념을 인지할 수 있는 유년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때다 싶었는지, 선생과 부모들은 상장과 박수를 동원하여 일등의 이미지를 공고히 다져나간다. 꼴찌는 아무것도 손에 쥐는 것이 없으며 다음에 잘하라며 다독여줄 뿐이다.


꼴등이 되기 위해 달리기를 하지 않을 것이고 ‘성적도 중간이면 됐다.’라는 위안을 받기 위해 공부하지는 않는다. 이겨야만 하는 꿈을 목표로 청소년기를 보낸 자아는 성인식과 함께 사회라는 창을 열게 된다. 아무리 둘러봐도 지기 위해 활동하는 영역은 보이지 않는다. 물건을 파는 것도 동업종보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함이요, 열심히 사는 것도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이 모든 게 이기려는 행위가 포함된다.


무엇보다도 상위 자본에 합류하려는 욕심이 가장 큰 것 같다. 당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스포츠가 생존을 위한 의무감으로 사회적 질서의 테두리에서 움직인다. 취미라고 반문한다면 인정해주고 싶다. 하지만 관계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기기 위함이라면. 고급 승용차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조건은 경쟁에서 이긴 대가로 취득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학생들과 직장생활도 생존을 위해서 이기려는 과정은 필수조건이 된다. 사는 것 또한 이겨 먹기 놀이라면 놀이다. 국가 간의 전쟁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합리적 구차함을 두르며 상황에 따라 에두른 합리성이 곧 이익이며 승자가 된다는 불편한 사실. 때에 따라서는 삶은 상업 사회를 벗어나기도 하지만 시합은 예외가 없다. 꼭 이기기 위해서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의무감을 지닌다. 보편적 삶 또한 살기 위해서 타석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이다. 거부할 수 없다. 아니 거부하기 위해서 승부의 세계를 거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것을 잘 다지만 이겨야 한다는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여간해서는 쉽지가 않다.


단지 눈으로 부딪치는 스포츠이기에 유독 냉혹하게 보이는 잔혹함이 안타깝다. 패자의 선택은 눈물을 참거나 흘릴 일만 남게 된다. 스포츠를 살짝만 벗어나더라도 진다는 것에 대한 잔인하고 냉정한 사회적 시선은 자괴감까지 몰고 올 정도다. 내몰린 자영업과 생활고로 자살하는 일은 덤덤한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하수관에 한 사람씩 등 떠밀려 들어가고 있다. 마지막 지점은 절벽이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버둥에 인간 샌드위치가 만들어지고 있다. 안간힘을 쓴다지만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너와 나.


*“서바이벌 쓰리 쿠션 대회”가 한창이던 그날이다. 결승전에서 한국 선수와 유럽 선수가 만났다. 접전 끝에 유럽 선수의 견제구를 풀어내지 못해 한국 선수가 좌절하는 장면이 카메라 앵글에 포착됐다. 패해버렸다. 카메라맨은 곧바로 관중석에 앉아있는 그 선수의 아내를 비춘다. 그리고는 몇 초간은 움직이지 않는다. 엄마 품에 안겨있던 딸아이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측은함을 드러내어 상술로 접목한 카메라맨을 칭찬해야 할지,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는 관중이 되어야 할지.   




* 한국의 당구문화에만 존재하는 **“죽방”이라는 사행성 규칙을 합법화시킨 경기방식이다. 2018년 9월 “제1회 서바이벌 3쿠션 마스터”가 흥행을 거두자 연이어 11월에도 개최했다. 이듬해 2, 5, 8, 9월까지 총 6회를 끝으로 종료되는 듯했으나 2023년 다시 부활하여 흥행을 몰아가는 듯하다.

** 지역에 따라 “즉석” “터주기” 등의 은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득점할 때마다 정해놓은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며 지금도 심심찮게 행해지는 어두운 당구문화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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