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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19. 2023

수수께끼 당구대

당구장에서 ~ 1

당구대는 참말로 까칠한 녀석이다. 관리가 조금이라도 소홀하다 싶으면 여지없이 용심 쓰며 당구공을 놀려먹는다. 별다른  있는 것도 아닌데, 청소기로 초크 가루를 최대한 털어내기만 하면 되는데. 아주 간단하지만 어지간한 부지런함이 없으면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똑같은 방법으로 청소하며 관리한다 해도 한결같은 구름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한마디로 당구대는 수수께끼다.


공치는 스타일도 사람마다 제각각인데 당구대 또한 지네들 마음대로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동호인들은 단지 청소 안 한다는 이유만으로 주인을 들볶을 뿐이다. 공이 너무 안 굴러서 욕먹는가 하면 너무 잘 굴러도 외면받는다. 각이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핀잔 듣기도 한다. 때로는 보풀이 묻어있어도 트집 잡히며 겨드랑이털이나 날 파리가 날릴 때도 상황에 따라 한 마디씩 거들고 있다. 물론 당구대를 보며 화풀이하지만 언제나 주인의 귓가에서 맴돈다.


*똑같은 제원인데도 왜 당구대마다 성격이 다를까. 당구공을 오래 사용하여 짱구가 되었거나 낡은 천을 문제 삼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수수께끼를 풀기에는 석연치 않다. 모서리 조인트 방식은 주로 대각과 사각 형태를 갖추고 있다. 튕기는 반사각이 다른 느낌을 건네주는 것 같지만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칠 뿐이다. 일명 ‘똥창의 미스터리’를 받아주기라도 한다면 두말없이 좋은 당구대라 극찬할지 모르겠다.


당구대에 얹혀있는 **석판에서도 미묘함을 느낄 수 있지만 뜯어볼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재질인지 잘 안다지만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내공이 빈약하다. 단순하게 화강암보다 슬레이트가 유럽산이어서 더 좋다는 이유 같은 것 말이다. 석판을 덮고 있는 천의 품질에 따라 구름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정전기 현상으로 볼이 가볍게 구른다든지 묵직하게 굴러가는 느낌이 맨눈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초크 가루를 훔쳐내는 방법에 따라서 결이 달라지기도 한다. 좌우로 난잡하게 비빈다든지 가로로 또는 세로로 닦는 행위다. 얼핏 듣기에도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닦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지만 그 이유도 뚜렷하지 않다. 당구천의 기름 성분과 당구공에 묻어있는 세척제의 흡수량에 따라 차이를 보일 때도 있다. 볼을 닦을 때 묻어있는 왁스의 적절한 훑어냄은 관리자의 재량이기에 일일이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사 지켜본대도 미세함의 차이를 밝히지는 못한다.


이 모든 것이 일률적이라 해도 표현 각의 일관성을 갖추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실내온도 때문이다. 당구대 자체에서 일정함을 유지한다지만 외부 온도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특히 새벽 시간대에 퉁퉁거리는 현상은 난감할 정도다. 당구장 안에서도 출입문과 창문 가까이에 비치되어 있다면 다른 곳에 비해 온도 영향을 더 받게 된다. 그 이유로 제각각 섬세한 표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또한 정답이라기엔 좀 억지스럽다.


한 친구가 생각난다. 기업체 관리직에서 명퇴하여 가득 찬 나이 때문에 당구장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당구의 ‘당’자도 모르는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편견은 오판이었다. 그 친구 때문에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큐 장에 큐가 꽂혀있는 순서를 외울 정도로 철저했으며 당구대 관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주인보다 잘했으니 말 다 했다.


당구대가 춤추니 춤을 추니

과학자 철학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뒤따른 유학자 사랑하나 건네주니

당구대가 춤추네. 춤을 추네.     




* 제각각이던 당구대의 크기는 가로세로 2대 1 비율로 1850년대에 이르러 현재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1892년 영국과 아일랜드당구협회에서 테이블 표준을 공식화했다.

** 석판 : 영국 출신의 사업가 John Thurston(1777~1850)이 1826년에 슬레이트 석을 당구대에 최초로 접목하였다. 0.4% 미만의 극히 낮은 수분지수와 열에 강한 절연체이며 불활성으로서 인체에 해롭지 않아 당구대 석판으로 선호한다고 한다. 한국은 주로 화강암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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