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인간이고 인간은 작은 우주다.

by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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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지상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돌이 자신이

원래 있던 땅으로 돌아가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불이 위로 타오르는 이유는 불이 태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 탄생 이후 1500년 동안

세계 자연관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사고였다.


그러나 갈릴레이에 이르면 모든 것이 혁명적으로

변한다. 수학을 자연을 기술하는 보편 언어로 관철

시키면서 수학과 경험에 입각한 기계론적 자연관

이 도입된다.


그것은, 자연현상이 지닌 목적을 논하지 않고,

오직 그것이 가진 기계론적 필연성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세계관이다.


이런 자연관이 서양에서 과학혁명을 촉발시켰으며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슈비처라는 인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양 근대 자연과학의 발전은 두 가지의 위대한

업적, 즉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한 형식적인 논리체계의 발견,

그리고 르네상스의 체계적 실험에 의하여 인관관계를

찾아낼 수 있다는 발견에 근거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근대 자연과학의 핵심이

형식적인 논리체계와 체계적인 실험의 결합으로

보았다.


갈릴레이의 경험적인 관찰과 수학적 연역, 즉

'경험'과 '이성'을 서로 결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대 과학이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론적 자연관은 스스로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지구를 완전히 파괴할 핵전쟁 위협,

자연환경의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파괴로 기계론적

자연관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유기체적 자연관'

이다.


유기체적 자연관의 핵심은

첫째, 영원불변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하나의 유기체적 관계

나 시스템에 들어 있기 때문에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셋째, 모든 것은 관계성 속에서 드러나며, 따라서

통합된 전체 속에서 발생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서양 근대 자연과학의 한계로 대두된

유기체적 자연관은 동양의 음양오행론과

닮아 있다.


"무극이면 태극이다. 태극은 운동하여 양을 낳고

운동이 극에 이르면 정지하고 그것이 정지하면

음을 낳는다. 정시 상태가 다하면 다시 운동하고

순환하여 서로 그 뿌리가 된다. 순환 과정에서

음으로 갈라지고 양으로 갈라져서 음양의 두 짝이

세워진다. 양이 변화하고 음이 그것과 결합하여

수ㆍ화 ㆍ목ㆍ금 ㆍ토의 오행을 낳는다."

신유학의 창시자 주돈이의 저작 태극도설에

나오는 내용이다.


"흙에서 나무가 자리기에 나무는 흙을 이기고,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나무를 자를 수 있기에

쇠는 나무를 이기고, 날카로운 칼이나 농기구를

녹여버릴 수 있기에 불은 쇠를 이기며, 아무리

활활 타오르는 불도 물로 끌 수 있으므로 물은

불을 이긴다."


이 오행의 주기가 끝나면 이 패턴은 다시 영원히

되풀이된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다는 불교의

연기론과도 닮아 있다.


이러한 유기적 순환 패턴은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사회현상 나아가 역사현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음양오행론이다.


이것은 군주 개인이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의 필연적 흐름이니 아무리

영민한 군주라 해도 그저 역사 철학적 흐름을 읽고서

거기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동양의 자연관

이다.


무한한 우주의 자연현상도 인간의 감정이나

육체의 구조, 정치 체제의 구조에도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사상이 음양오행론이다.


개체는 전체고 전체는 개체다.

우주는 또 다른 인간이고 인간은 또 다른 우주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다.


음양오행이 오묘한 법칙인가,

비과학적인 모순인가?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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