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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Jul 15. 2020

인정 욕구에 대한 철학적 사유

인정 욕구에 대한 철학적 사유

지앤비 8층 사무실에서 바라본 하늘,장마비는 아름다움을 더욱 운치있게 빛낸다.

주인과 노예가 살았다


주인이 노예에게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노예는 주인을

주인으로 섬기고 인정한다.


그러나 과연 노예의 그 인정이 자발적인지

주인은 의심한다. 그래서 진정한 인정에 목마른

주인은 노예에게 자유를 준다.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타인이 자신을

인정해줄 때에만, 그 인정은 의미가 있으니까.


문제는 노예에게 자유를 주는 순간, 노예는

인정은커녕 주인에게서 도망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인은 딜레마에 빠진다.

억지 인정에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인정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인정 욕구가 너무 크다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주인은 노예에게 자유를 부여하리라는 것,


이것이 헤겔 철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프랑스

철학자 코제브가 <헤겔 독해 입문>에서 밝힌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우리는 부모, 선생님, 선배, 종교, 사회 등등

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안달이 나 있다

이런 수많은 인정을 통해 우리의 자아는

완성되고, 심지어 미래 운명도 결정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혼란스럽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타인이 정해논 규칙 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말 잘 듣는 아이, 모범생, 믿음직한

사람, 선량한 시민, 역사에 길이 남은 위인이

되기도 하지만 내면의 나는 위축된다.


자기만의 사유와 욕망이 사라지고, 주체적

당당함, 위풍당당한 뻔뻔함은 없어진다.


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일까?

인정 욕구는 과연 유익한 것인가? 위험한

것인가? 여기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


입신양명, 공자 이래 모든 유학자들의 모토다.

높은 관직에 올라 출세를 해서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가문의 이름도 널리 알리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다.


공자는 "가는 길이 같지 않은 사람과는 서로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말했다.


"추운 계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라고 했듯이

청렴한 사람은 부귀를 살아생전 경시하는 것을

군주의 미덕으로 삼은 것이 유교의 철학적

이념이었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로움도 내가 원하는

것일 때,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로움을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맹자 또한 인정 욕구를 지지했다.


"의로움을 앞세우고 이익을 뒤로하는 자에게는

영예가 있고 이익을 앞세우고 의로움을 뒤로하는

자는 치욕이 따른다."


맹자와 대립되는 순자 또한 인정 욕구에서는

맹자와 같은 입장이었다.


이것이 군자와 소인, 대인과 소인, 지배자와

피지배자에 대한 윤리적 레토릭이라 할 수

있었다.


대인이 커다란 이유는 그가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인이 작은  이유는 그가 공동체에 살면서도

자기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인이 소신을

전체를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누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말인가?

그러나 대인이 지배자가 되었을 때, 공동체

전체를 사유화할 수 있으므로 유교철학은

이를 경계하고 그 수단으로 인정 욕구를

강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반면 인정 욕구가 모든 대립과 갈등의 원인이므로

인정투쟁 자체를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가 있다.


송견이라는 철학자는 "모욕당해도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밝히면 사람들이

서로 다툴 일이 없다."라고 했다.


자신을 모욕했던 타인에게 강한 적개심, 나아가

복수심을 품게 되므로 이는 공동체 내부의 갈등

과 다툼의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어떤 행동이 영예로운가, 치욕스러운가는

특정 체제가 규정하는 것이고 이는 시대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는 점에서 송년의 주장은

매우 혁명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 이제 우리가 사유할 차례다.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인정 욕구에 목매달고 자신을 닦달 거려야

옳은 것인가, 아니면 초월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초월했을 때 역사의 진보는 이루어질 것인가,


사유하고 질문해 보자.

적어도 지금까지는 세상은 인정 욕구에

안달하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은 인정 욕구로 춤추는 연극무대 아니던가,


어떤 춤사위가 관객의 박수가 가장 많이 나올까

궁금해하지 밀고, 어떤 춤사위가 나를 가장 신명 나게

하는지 궁금해할 의향은 없는가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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