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장자의 '양생주'와 '인간세'

패럴랙스 인문아트 <노자와 장자>3권 2과

by Plato Won
Plato Won 作

장자의 내편 세 번째,네 번째 주제는

'양생주'와 '안간세'이다.


양생주(養生主), 기를 양, 날 생, 주인 주,

'생명을 북돋우는 요체'라는 뜻이다.


인간세(人間世), 사람 인, 사이 간, 인간 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란 뜻이다.


장자는 '소요유'와 '제물론'을 통해

초월적 인식을 논하였다면, '양생주'와 '인간세'편

을 통해서는 실제 삶에서 신명(身命, 몸 신, 목숨 명)

을 온전히 보존하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살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자유롭고 훌륭하게 사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기여하면서 보람있게 사는 길인지 논하고 있다.


세 번째 양생주 편은

어떻게 하면 신나는 삶, 활기찬 삶,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양생주란 자연의 순리에 따라 거기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신체와 생명을

온전히 보전하는 삶을 말한다.


지식욕, 자존심, 자기중심주의 같은 일체의

인위적, 외형적인 것을 넘어서서 자언의 운행과

그 리듬에 따라 인간의 행동을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할 때, 인간의 생명력은 활성화되고

극대화되어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

양생주의 핵심 내용이다.


장자는 양생주를 설명하게 위해

'포정의 소 잡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포정의 소 잡는 이야기>

"

포정이라는 훌륭한 요리사가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았다. 쪼륵쪼륵, 싹싹 소리를 내며 칼을

쓰는데, 행동이나 소리가 모두 다 박자와 음률에

척척 맞아떨어지니, 그 몸놀림은 옛 임금의 잔치

에서 보던 춤과 같고, 그 소리 또한 옛 임금 때

노래에 맞추던 장단과 같아서 문혜군이 크게

감탄하여 물었다.


"참으로 훌륭하도다. 소 잡는 기술이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를 수 있느냐?"


"제가 귀히 여기는 것은 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통째인 소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신으로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늘이 낸 결을 따라 큰

틈바퀴에 칼을 밀어 넣고 큰 구멍에 칼을 댑니다.


훌륭한 요리사는 해마다 칼을 바꿉니다.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요리사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19년 동안 이 칼로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으나 이 칼날은 이제 막 숫돌에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이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칼날이 틈이 있는 뼈마디로 들어가니 텅 빈 것처럼 넓어,칼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

그러기에 19년이 지났는데도 칼날이 이제 막

숫돌에서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근육과 뼈가 닿는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다루기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 조심합니다.

시선은 하는 일에만 멈추고, 움직임은 느려집니다.

칼을 극히 미묘하게 늘리면 뼈와 살이 툭하고

갈라지는데 그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같습니다."


이를 듣던 문혜군이 말한다.

"훌륭하도다. 나는 오늘 포정의 말을 듣고

생명을 북돋움이 무엇인지 터득했노라."


장자는 가장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을 등장시켜 그 사회에서 가장 높은

신분인 임금 앞에서 신기의 소 잡는 기술을 선

보이며 '양생의 도'를 임금에게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한다고 여겨 온 상식적

가치관을 뒤흔들고 뒤집는 '가치전도'를

시도하고 있다.


<삶에는 끝이 있다.>


"삶에는 끝이 있는데,

아는 것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이다.


착하다는 일을 하더라도

이름이 날 정도로 하지 말고

오직 중도에 따라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라.

그러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으며

어비이를 공양할 수 있고

주어진 나이를 채울 수 있다."


장자는 그의 시구절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 신명을 보전하는 양생주라고 말한다.


네 번째 주제는 '인간세'다.


인간세의 핵심은 심재(心齋)다.

마음 심, 가지런할 재, 심재는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것으로, 마음을 굶겨 비우는 것을 말한다.


심재는 오상아(吾喪我, 나를 잃어 장사 지낸다)

와 좌망(座忘, 앉아서 잊어버림)과 함께

장자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다 같이 마음의 욕심, 분별심

이분법적 의식, 일상의 의식, 자기중심적 의식,

조급함의 일상을 마음을 완전히 버리고,

이를 초월하는 초의식, 공심(空心),

새로운 마음을 갖는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심재,

마음을 어떻게 굶기고 비울 수 있는가?


장자는 공자의 입을 빌려 말한다.


마음을 하나로 모은 다음, 귀 대신 마음으로 듣고

그 다음에 기(氣)로 들어라고 말한다.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대상을 인지할

뿐이지만 기(氣)는 텅 비어 있는 모든 것을 수용하니,

이렇게 텅 빈 氣를 사물로 대하면 그 빈 곳에 道가

들어온다. 이렇게 道가 들어오도록 마음을 비우는

것(虛), 이것을 마음을 굶기는 것, 심재,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 작용이나 인식 작용을 초월하여

마음을 비우는 空心으로 새로운 마음을 가지런히

하면 道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장자의

심재다.


장자는 인간에 편에서 그의 역설의

독특한 사상인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의 사상을 등장시킨다.


<장석과 사당 나무 이야기>


어느 날 장석이라는 목수가 큰 도토리나무 밑에

이르렀는데 무수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장석은 본체만체 지나쳐 버렸다.

그러자 제자들이 의아해서 왜 천하의 목수가

저 큰 나무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는지

물었다.


장석이 답하길

"쓸 데가 없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을 것이요,

그릇을 만들면 깨지고, 문을 만들면 진이 나오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먹을 것이니라. 크기만 하고

나이만 먹었지 하등 쓸모없는 천물이니라."


그런데 그날 밤 꿈에 나무의 신이 나타나

장석을 이렇게 꾸짖었다.


"이 놈아 네가 말하는 쓸모 있는 나무들은

열매를 빼앗기거나 부러지거나 베이거나,

깎이거나 하는데, 그게 너에게는 쓸모이겠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그 쓸모가 곧 단명이

되는 것이니 내가 이렇게 수백 년을 산 것과

거대한 나무가 된 것은 모두 쓸모가 없었기

때문임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인간의 감각 작용이나 인식 작용을 초월해서

마음을 비우는 공심으로 새로운 마음을

가지런히 하면 道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장자의 인간세, 심재의 사상이다.


장자의 인간세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이야기다.


얼핏 생각하면 유용하면 위험하니

무슨 일이든 나서지 말고 유용하게 될 생각조차

하지 말고 은둔의 지혜로 살아라고 들릴 수

있으나, 아니다.


장자가 말하는 인간세는 오히려

유용성의 극대화에 대한 삶의 지혜다.


때를 기다리면 거목이 될 수 있는 나무가

조급하게 유용성만 따져 자신의 몸을 아궁이에

던졌다는 작은 나무의 조금함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장자는 세상 자질구레한 유용성에

정신 팔지 말고 먼저 마음을 비우고 굶기는

심재의 자세를 유지하며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내면을 비우고 기다리라고 가르친다.


아무리 급해도 이슬이 맺히려면

아침나절까지는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쉬이 자신의 유용성을 조급하게 사용해서

후회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내면을 길러

때를 기다리면 그 속으로 氣가 쌓이고

氣는 道를 불러들여 이윽고 크게 유용성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인간세, 세상을 사는

삶의 지혜라는 것을 장자는 인간세 편에서

여러 우화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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