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대신한다

by Plato Won
Plato Won 作
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마크 로스코


내면의 복잡한 감정은 어떻게 표현할까.

침묵이다. 침묵은 가장 정확한 감정의 표현이다.

회화에서 침묵은 극단적 단순함이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거장 마크 로스코는

내면의 감정을 극단적 색채로 표현했다.


"말은 명확하나 애매하고 모호하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이율배반적 상황이 발생한다.

마크 로스코는 그의 작품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화가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보다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

마크 로스코가 지향한 회화의 방향이다.


"나는 추상화가가 아니다.

색이나 형태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대신 비극이나 운명, 인간의 본연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로스코가 그토록 추구했던 회화는

단순한 표현 속 복잡하고도 깊은 심정"을 담아

내는 것이었다.


"내가 삶에서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다.

검정이 빨강을 집어삼키는 것"


로스코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 빠져든다.

니체는 이 책을 통해 고대 그리스 비극들은

보는 이들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고 주장했다.

비극이 주는 숭고함이 보는 이들의 감정의

골을 해소해준다는 니체의 주장을 로스코도

받아들이며 그의 작품세계는 단순함 속으로

더 가속페달을 밟는다.


"비극적인 관념과 이미지는 늘 내 머릿속에 있다.

그러나 끄집어낼 수 없다. 그것은 실체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로스코의 작품은 이미지나 형태, 실체를 찾을 수 없다. 선인지 면인지 어떤 소재인지도 모른다.그런데 왜 관객들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릴까.


거대한 캔버스 위에 간결하고도 깊은 색과 의미,

알 수 없는 형태가 주는 힘은 침묵이고, 침묵은

우리에게 숭고함의 미학을 선사한다.


감정은 감히 말할 수 없는 침묵이고

침묵은 가장 정확하다.


마크 로스코 그림을 본다.

그 무한함이 경이롭고 그 숭고함이 슬프다.

.

그런 마크 로스코의 치열하고 장대한

새로운 시도는 관객들에게는 숭고함을 전했으나,

정작 자신의 삶에게는 숭고함을 전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불행히도 로스코는 그의 명성이 더해질수록 그의

내면은 피폐해지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이 대중에게 소외받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노파심으로 그의 내면의 세계는

무너져 갔고, 불행히도 1970년 67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로스코는 새롭게 시도한 회화로 하늘을 향해 날기를 원했고, 하늘로 날아올랐으나,그 행위 자체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그 하늘을 감상할 시간을 놓치고 사라졌다.


"하늘을 향해 뜀뛰는 사람들은 그 행위 자체에

몰두하느라 정작 하늘을 쳐다보지 못한다."


로스코는 그렇다치고,나는 어떠했는가?

그런 우(憂)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성찰하고 사유하고 질문해야 하는가?


침묵은 정확하다.그러나~~~

인간은 늘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침묵에 말(言)이 섞이며 그 의미를 퇴색시킨다.


입 닫은 하늘아 내 마음 전하렴

답답한 바람아 내 말 전하렴


검정이 빨강을 집어삼키는 상황,

長考끝에 초읽기에 몰려 악수를 두는 바둑판

주변에 조력자가 부재한 상황

人間이 그리는 무늬,人生이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는 침묵이다.

침묵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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