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선입견, 자만을 버린 ‘텅 빈 상태’를 뜻하는 ‘허(虛)’는 ‘무’와 더불어 노자 사상의 핵심을 이룬다.
'허’에서 자라난 만물이 각자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 ‘정(靜), 즉 고요함이다.
뿌리는 생명의 시작이자 만물의 기원으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살린다.
도가 덕을 통해 드러나듯이, 허는 정을 통해 드러난다. ‘허’가 덕으로 나타날 때는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는 겸허가 된다. 노자는 인간의 본성을 ‘무지무욕(無知無慾)의 순박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라 보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우라고 충고한다. 어린아이는 세속적인 욕망이 없고, 부드럽고 약하며, 천진무구하다.
노자는 양극의 상호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다가 고요함으로 끝맺는 것이 만물의 운명임을 아는 것을 ‘명(明)’, 즉 ‘밝음’이라 일컫는다. 그는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지만, 자신을 아는 자는 밝다고 하면서 두 가지 앎을 구분한다. 인간의 잣대로 사물을 분별하여 얻는 앎이 ‘지(知)’라면, 마음을 비워 도를 아는 것은 ‘명(明)’이다. ‘지’를 추구하는 학문은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여 물질적 행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 행복은 명을 추구하고 도를 실천해야 얻을 수 있다.
“학문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고,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학문이 진보하면 대상을 분별하는 지혜가 늘어나고, 명예나 물질적 부를 좇는 욕망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학문과 욕망을 버리고 생의 근본, 즉 본연의 도를 지켜야 한다.
“문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
그 나감이 멀면 그 아는 것은 더욱 적다.
이로써 성인은 가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밝게 살피며, 하지 않고도 이룬다.”
노자는 진정한 지식은 바깥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다고 말한다. 삶 속에서 도를 기르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에서 보듯, 자신을 안다는 것은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극복한 사람은 전 세계를 정복한 영웅보다 강하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은 만물을 널리 포용할 수 있고, 포용하면 공평해질 수 있으며, 공평해야 세상을 온전하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