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실현하려면 인위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여기서 자연(自然)은 산과 바다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으로, 인위적인 개입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간 중심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나,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가 바로 ‘무위(無爲)’이다. 무위의 태도를 지니면 특정 이념과 기준의 지배를 받지 않기에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다. 세계를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계에 맞추는 것이다.
도는 자연을 본받고, 무위라는 덕을 통해 현
실에서 실현될 수 있다. 무위와 자연은 도와 덕처럼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를 이룬다. 노자는 자연의 운행 원리를 모방하는 삶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로 만들고자 하였다.
자연은 아무런 목적 없이 무심하게 운행하고, 만물을 편애하지 않는다. 사심이 없어서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기에 영원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자연의 질서에 따른다는 점에서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나태함이나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하는 방종과는 다르다.
도를 깨우친 성인은 자연의 질서를 본받아 무위의 태도를 지니고, 말을 앞세우지 않는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행한다. 그는 자연이 그러하듯 만물을 성장하고 변화하는 흐름에 맡긴 채 소유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으므로 다툼이 없고, 원하던 결과를 얻고 나면 그칠 줄도 안다.
그래서 억지로 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으뜸 가는 선(善)은 물과 같다.”
노자는 자연에서 도의 속성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물’이라 말한다. 물은 자신을 낮출 줄 알고, 다툼을 만들지 않는다. 모두가 싫어하는 낮고도 더러운 곳에 머물면서 다른 생명을 이롭게 하고도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는 겸허한 태도를 지녔다. 장애물을 만나면 휘감고 돌거나 비켜 가므로 갈등과 다툼이 있을 리 없다. 다툼과 교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물은 다투지 않는 부쟁(不爭)과 자신을 낮추는 겸허(謙虛)의 덕을 말없이 가르쳐 준다.
노자가 말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이란 결국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바탕으로 도를 실천하는 삶이다. 물은 가장 부드럽고 약하지만 아무리 굳센 바위도 뚫는다. 유연하고 약한 것이야말로 가장 강한 것이라는 이치를 알면 능히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