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대화편 '즐거움'에 대하여

by Plato Won
Plato Won 作,천병희 선생님의 플라톤 대화편 표지

삶을 행복은 즐거움이고,

삶의 즐거움이란 곧 지혜롭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젊은이 필레보스와

'즐거움'에 대한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이어간다.


"필레보스는 모든 생명체에게 즐기는 것,

즐거움, 기쁨, 그리고 이런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 좋음이라고 주장하고 있네.


그렇지만 우리 쪽 반론은

좋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것, 지성적인

것이네. 그리고 그와 동류인 올바른 의견과 참된

추론이 적어도 그런 것들에 관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더 좋고 더 바람직한 것일세.

그리고 그런 것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지금 살아 있거나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존재에게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것일세"


소크라테스는 즐기는 것이 좋음이라는 필레보스의

견해에 반론을 제기하며 지혜롭고 지성적인 것이

좋고 유익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계속해서 토론을 이어간다.


"흰색의 순수성은 어떻게 얻어지며,

그것은 어떤 순수성인가?"

흰색의 가장 큼이나 가장 많음에서 인가

아니면 다른 색깔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가장 덜 오염된 흰색에서 인가?

적지만 순수한 흰색이 많지만 불순한 흰색보다

더 아름답고 더 참되다고 말해도

우리는 전적으로 옳은 말을 하는 것일세"


소크라테스는 흰색의 순수성에 대한 정의에

빗대어 즐거움 또한 그 크기나 강도가 아니라

그 순수성에 있다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 아무리 즐겁다 해도 괴로움이 겹쳐있으면

즐거움의 순수성은 훼손되는 것이고,


제 아무리 권력이나 명예를 얻어 즐겁다 해도

그 권력이나 명예를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사용하면 그 순수성은 훼손되어 즐거움을 해친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그 크기나 강도를 위하여 그 순수성을 훼손시키면

그 일을 시작하지 않음만 못하다.


경영자가 황금에만 눈이 멀어 있을 때,

권력자가 사적 권력욕에 취해 있을 때,

삶이 물질적 쾌락만 추구할 때,

본연의 순수성은 훼손되고

즐거움은 연기처럼 사라져 그 자리에는

희끄무레한 회색잿빛 고통만 남는다.


희끄무레한 잿빛 회색,

흰색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검은 색도 아니다.

이것에도 어울릴 수 없고 저것에도 어울릴 수 없다.

즐겁다고 하기엔 찐한 후회만 가득한 인생,

재능이 가득하여 많은 것을 쌓았다 해도

지혜롭지 못한 인생은 결국은 희끄무레한 인생으로

전락한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명쾌한 지적이다.

그 말을 대화편에서 아테네 젊은이 필레보스에게

흰색의 순수서에 빗대어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참된 것은 좋고 즐거운 것이고

좋고 즐거운 것은 참된 것이다.


흰색이 흰색인 이유는 그 순수성에 있듯,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그 목적이 순수하고

그 수단이 정당하면 그 결과 또한 참되고 좋고

즐겁다.


"즐거움은 그 크기나 강도에 있지 않고

그 순수성의 크기에 달려 있다."

이 명쾌하고도 분명한 소크라테스의 지적을

실천하려면 재능만 가지고는 안 되고

지혜롭고 지성적인 것, 그것과 동류인 올바른

의견과 참된 추론이 그것들에 관여할 수 있도록

늘 사유하고 질문하는 삶을 습관화해야 한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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