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시간성이고 시간은 인간의 존재 지평선이다

by Plato Won
Plato Won 作,산책은 사색을,사색은 다시 산책을 이끌어낸다.인간의 삶은 허공으로 향하는가,땅밑으로 향하는가
인생은 오르막길인가, 내리막길인가!올라갔다 내려가는 등이 굽은 길인가
콘스탄틴 한센 作,진흙으로 시람을 창조하는 프로메테우스

"인간의 실존은 곧 염려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그는 '존재와 시간'에서

그리스 염려의 신 쿠라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인간의 실존은 그 자체가 염려하고 말한다.


"어느 날 염려의 신 쿠라가 강가에서 점토로

흙덩어리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나가던

주피터에게 이 형상에 혼을 넣어달라고 부탁해서

사람을 만들었다.


쿠라는 자신이 만든 형상이므로 이 형상의

이름을 쿠라라고 붙이려 하자. 주피터가 자신이

영혼을 불어넣었으므로 자신의 이름을 붙이겠다고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대지의 신인 텔루스가

나타나 흙덩이는 자신의 것이니 자신의 이름을

붙이겠다고 서로 싸웠다,


이렇게 세 명의 신들이 흙으로 빚은 형상을 놓고

싸우자, 시간의 신인 사투르누스(Saturnus)가

나타나 싸움을 정리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주피터가 가져가고,

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은 쿠라가 가져가라.

그리고 이 형상은 흙(후무스)으로 빚었으니

호모(인간)로 부르도록 했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살아가면서 염려의 신 쿠라의 지배를 받으니

불안을 늘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기는 하나,

시간의 신 사투르누스가 나타나 이를 정리해준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염려에서 벗어나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 미래를 기획할 때

인간은 비로소 염려에서 벗어나 주체적 현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빌어와 설명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이를

"피투적 존재에서 기투적 존재가 되는 것"

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은 세상 속으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던져진 피투적 존재이나,

인간은 시간의 유한성을 타고나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스스로의 의지로 미래를

기획하는 기투적 존재로 변모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은 매 순간 죽었다 깨어나기를 무수히 반복하면서

실존하는 현존재라 말한다.


현존재에게 죽음이란 확실한 가능성이면서도

(반드시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므로), 경험할 수 없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현존재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죽음을 생각할 수는 있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죽음의 선구'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나 만은 이것은 현존재에게 시간의 본질인

유한성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죽음의 선구'를 통해서 우리는 현존재의

존재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철학이다.


존재의 본질은 無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나

결단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세계에 피투 되어 (내던져져) 다른

존재자들을 도구로서 사용하면서 '세계 내 존재'로

비본질적 실존을 영위한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비본래적 실존을 사는 세인들에게 자기 지신은

은폐되어 있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을 욕망하고, 타인의 시선에 갇혀 인정받으려고

아등바등거리고,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사물이나

사람에 집착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추구하는 주체인

자신을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일상의 낯섦을 맞이하고

염려의 신 쿠라를 맞아들인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이 걷다 "아니 여기가 어디지"

한다거나, 밤에 잠을 자려다 문득 고요한 방안을

짓누르는 어둠의 중압감에 이유 없는 불안감이

스며든다거나, 갑자기 죽음의 절망감에 두려움이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

죽음에의 선구를 통해서 현존재를 세상에 위치

시키고, 낯선 세계에 피투되어 존재하는 자신을

인식하며, 그 안에서 가능성으로의 미래를 설계

하는 주체, 그 시간성을 하이데거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이데거가 저서의 명칭을 '존재와 시간'

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의 의미는 시간성이고,

시간은 '현존재의 존재 지평선'인 것이 된다.


"나는 두 친구와 길을 걷다가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며 검붉은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전율을 느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자연을 꿰뚫는

큰 소리의 절규를 느꼈다.

. The Scream"


뭉크가 자신의 그림 '절규'를 그릴 때

그때의 느낌을 표현한 말이다.


뭉크의 말처럼 불안은 이유도 없이 불쑥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긴 하나,

불안을 제거할 방법 또한 하이데거는 제시하고 있다.


결국 공포든 불안이든 염려든

시간의 유만성 속에 사는 한시적 존재가 인간이므로

아까운 시간을 불안으로 허비하지 말고

미래를 내 것으로 만드는 기투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불안을 제거하는 길이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철학이다.


인간의 실존은 시간의 함수이지

염려의 함수가 아니지 않은가.


인간의 실존의 시간성이고,

시간은 현존재의 존재 지평선이다.


아까운 시간을 염려의 끈으로 붙들어두지만

않으면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준다.



Plato Won


뭉크 作 The Sc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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