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는 나약함과 무능함의 표현이 아니다.

by Plato Won
Plato Won 作.이른 아침에 마주한 철쭉

사소한 일에 승부욕이 발동하여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면 보다 큰일을 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인내심이 없다면 모두와 충돌한다.

결국 끊임없는 갈등과 원망으로 얼룩진 삶만이 남는다.


인내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방지하여

큰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만드는 농축된 에너지다.


결코 나약함이나 무능함의 표현이 아니다.

여유와 자신감의 표현이 바로 인내심이다.


오죽했으면 한자어 인(忍)의 형상을

가슴(心)에 칼(刀)을 얹는 것으로 표현했을까.

그만큼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부터 크게 다치는 게 인내심이다.


순간의 화를 참으면 혼란이 잦아들고, 평안이

찾아오며 어리석음이 사라지고, 지혜가 성장한다고

성현들은 귀가 잡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그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카네기도, 록펠러도,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허구한 날 돈은 벌어오지 않고 아테네 광장에 나가

철학한답시고 정의를 외쳤던 소크라테스에게 그의

부인 크산티페는 머리 위로 구정물을 끼얹고 화풀이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어느 날 아테네 젊은이가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선생님, 결혼은 하는 게 좋습니까? 하지 않는 게

좋습니까?"


소크라테스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이렇게 답한다.


"결혼을 해서 어진 부인을 맞이하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악처를 만나면 나처럼 철학자가 될 수

있다네."


소크라테스 못지않게 유명한 인물이 그의 부인

'크산티페'다. 그녀는 남편이 철학자라는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남편을 못살게

굴었으며, 말이 많고 성미가 고약했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이 "왜 그런 악처와 같이 사느냐?"라고

물었더니, 대답은 이랬다.


"말(馬)을 다루는 일에 뛰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난폭한 말만 골라타는 법이라네. 난폭한 말을 잘

다루면 다른 말을 다루기 수월해니까 말이야.

내가 그 여자의 성격을 참고 견뎌낸다면 천하에

다루기 어려운 사람은 없다네."


소크라테스는 부인의 끊이지 않는 잔소리를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로 여기고, 귀에 익으면

괴로울 것이 없다고 말하며 부인의 잔소리에

웃으며 지냈다고 한다.


어느 날 크산티페가 잔소리를 퍼붓다 머리 위에

한 바기지를 끼얹었더니 소크라테스는 태연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둥이 친 다음에는 큰 비가 내리는 법이지."


그의 부인의 잔소리에는 한없이 관대했던

소크라테스도 아테네 배심원들이 그를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사형을 언도

했을 때는 적당히 타협하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고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여러분,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비겁함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죽음보다 비열함이 더 발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느리고 연로해서 둘 중 더 느린 죽음에

따라 잡혔지만, 내 고발인들은 빠르고 민첩해서

둘 중 더 빠른 것, 비열함에 따라 잡혔습니다.


그래서 지금 니는 여러분에게 사형을 언도받고

법정을 떠나지만, 내 고발인들은 진리에 의해

사악하고 불의한 자리는 판결을 받고 떠날 것입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들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부인과의 갈등은 목숨을 걸고

싸워서 지켜내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

'철학함'을 위해서는 인내하고 참을 수 있는 것이었다.

굳이 갈등을 표면화해서 부인과의 갈등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악의로 자신을 고발한 고발인과 무지로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아테네 법정의 배심원들

과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싸워,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그것은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하는, '철학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내에도 한계와 원칙이 있다.

적당한 때, 적당한 만큼,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히 행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행복의 원칙이다.


인내심이 작동해야 하는 그 적당함이란 어디쯤일까.


소크라테스가 그 질문에 답을 한 듯하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가치를 침범할 때를

제외하고는 굳이 대응해서 갈등을 표출할 필요가

있겠는가.


가치 없는 일에 열을 올려 싸우는 것은 바보짓이다.

반대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에 적당한 타협으로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비겁함이다.


인내심은 나약함과 무능함의 표현이 아니라

응축된 에너지의 결집이자,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인간의 품격(品格) 많은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지식을 적당한 때에 실천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은

'철학함'이다. 철학함은 사유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서 사유하고 질문해 보기를 반복해

봐도, 그의 부인이 들창코에 이마도 벗겨지고 돈벌이도

시원찮은 자신을 거두어준 것을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쯤의 잔소리야 물레방아

소리쯤으로 듣고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지 싸울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유하고 질문해 봐도 아테네의 무지함

과는 싸우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후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고 죽어간

그날을 "아테네가 철학에 신세 진 날"로 명명했지만

그 덕분으로 소크라테스의 '철학함'은 인류 2500년

지성사에 '정의의 향기'를 꾸준히 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향기가 나면 향기가 나는 이유가 있다.

꽃이든 철학이든 사람이든



Plato Won


Plato Won 作,밤에 마주한 쩔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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