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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May 02. 2024

하는 일의 의미가 미끄러질 때

시시포스의 형벌
Plato Won 作,5월 첫날의  MTB 신행은 의미 있는 사유를 안겼다.


하는 일의 의미가 미끄러질 때 지친다.

이것이 계속되면 만성적 스트레스로 이어져

삶이 무기력해지고 번아웃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하는 일의 의미가 미끄러진다."

무슨 의미까?


의미도 없는 일을 맹목적으로 반복할 때

그 일을 열심히 하는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의미가 있는 일이라도 그것이 차이와 반복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만 맴돌 때

그 일의 의미는 사라지고 지루함이 찾아들게 된다.


미국의 조직행동론 교수가 실험을 했다.


실직 상태의 실험 참가자들을 모아 자신들이

이전 받았던 월급의 두 배를 지급하고  매일 출근해서 8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A4용지에 5센티 간격으로 자를 이용해 줄긋기만 계속 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줄긋기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실험 참가자 전원이 한 달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했고, 참가자의 반은 단 1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신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산 위로 옮겨놓는 의미 없는 일을 무한반복하는

형벌을 받는다.


카뮈는 이 시시포스의 신화 이야기를 소재로

삶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철학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선긋기와 같은 반복적 일이라도 그 일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면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은

매일 16시간을 연필로 선긋기만 지속했다고 생전 인터뷰에서 밝혔다.


"서양의 단색화가 색깔을 단일화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을 단순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미니멀리즘

예술이라면, 나의 단색화는 선긋기라는

의미 없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꽉 차있는 머릿속

생각을 지워버리는 생각 비우기인 것이다."


박서보 화백의 말이다.

.

생각을 토해내서 이미지를 단순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토해내서 없애는 무화(無化)로

만드는 것이 박서보 화백의 단색화의 특징이다.


이런 단색화의 개념은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오래도록 탐구하고 고민하면서 탄생했다고

박서보 화백은 말했다.


박서보 화백의 단색화는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선긋기를 반복하면서  무엇을 그리겠다는 목적

없이 자신을 수행하듯 행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그러니 평생을 매일 16시간을 똑같은 선긋기만

해도 지루할 틈이 없이 신나고 재미있는 것이다.


의미 없는 선긋기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박서보 화백에서 의미 없는 선긋기는 사실

행위의 무목적성과 행위의 반복성을 통해 생각을

비워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위다.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가 그 형벌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의미 없는 바위돌 옮기기 행위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일뿐이다.


오늘은 파란 돌을 옮기고 내일은 빨간 돌을 옮기고 그래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그 일을 스스로 변화라는 행위로 승화시키지 않는 한 그는 영원히 형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시포스의 불행은 돌을 산 정상으로 들어 올리는

힘든 노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일을

무한반복해야 하는 견디기 힘든 지루함에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지성 버트런트 러셀은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일상적인 불행의 원인은 개인이

지루함을 느낄 때라고 말한다.


여기서 러셀이 말하는 지루함이란 '사건'이 일어나

기를 바라는 마음이 좌절된 상태를 말한다.


'사건'이 없으면 인간은 지루해하고,

지루함을 느끼면 인간은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러셀이 말하는 '사건'이란 무엇일까?


"어제와 오늘을 구별해 주는 그 무엇"이다.


지루해하는 인간은 지루함을 극복할 사건을 바란다.

인간은 지루해함을 극복하기 위해 불행해지는 일마저

마다하지 않고 사건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것이

러셀의 주장이다.


사건이 일어나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정작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루해 함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니.

그래서 인간의 호기심은 삶의 단초이자

행복의 뿌리인 듯하다.

 

"인간은 방 안에서 자중하지 못하고 결국은

촐랑거리며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결국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존재다."


수학자 파스칼은 인간 비극의 원인은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것이며, 이 인간의 병을 어떻게 치유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를 고민하였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여가활동은 쓸모

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시간이 남는다면

차라리 명상과 성찰을 할 일이다."


니체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사냥과 같은

인간의 여가활동을 노예들이 하는 노동의 연장으로 보았던 철학자다.

 

사양 철학자들은 한결 같이 인간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중병에 걸려있으므로, 자신의 본업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 지루함으로 고통을  받아

불행해진다고 진단한다.


인간의 삶에서 직업이 생계수단을 넘어

행복의 뿌리이자 삶의 동인이라는 것이

그들의 철학적 사유다.


인간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사냥을 하거나, 도박에 빠지거나, 명예로운 직책을 찾거나 심지어는 권력자라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토끼 사냥을 위해 하루종일 무거운 장비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귀족들의 모습을

니체는 '비천한 노예의 노동의 연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어제와 오늘이 같고, 오늘과 내일의 모습이

같다면 지금 하는 일의 의미는 미끄러져 내린다.


산을 오르고자 하는 욕망의 원인은 산 자체가 아니다.

산을 오르며 자연과 나누는 교감, 이를 통해 얻는

경이로움이 산을 정복했다는 정복감보다 더 소중하다.


선 긋는 단순작업도 누군가에는 의미 없는 지루함

이지만, 박서보 화백에게는 서양 단색화에 반기를

들고 한국의 단색화를 재창조하는 의미 있는 창작활동인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즐기며 신명 나게 그 지루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업적은 그가 떠난 이후에도 길이남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열심히 하기에 앞서

그 일의 의미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는 일이 더 시급한 일이다.


어제보다 다른 오늘, 오늘보다 다른 내일의 세상을

만드는데 자신이 지금 행하는 일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 일은 무척이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지루함 없이  평생을 재미를 느끼고 신명 나게

매진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삶은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의 의미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숨어 있는 가치를 찾아야 한다.


오늘 글은  5월의 청명한 어느 이른 새벽,

프랑스 철학자 라깡의 " 의미가 미끄러진다."

철학적 주제를  사유의 틀에 넣어서  돌려보고 꼽씹어 사유하고 질문하면서 그 의미를 확장해 본 글이다.



Plato Won

박서보 화뱈은 매일 이렇게 하루 16시간을 선긋기만 했다고 한다


박서보 화백
루이비똥과 박서보 화백의 협업으로 탄생한  아티카퓌신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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