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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May 19. 2019

서양 인문학의 문을 연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사양 인문학의 문을 연 소크라테스
나는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생각하는 법을 일깨운다.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것으로 알려진 이

신탁(神託)소크라테스 철학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입니다.'신탁'이란 "신이 인간 또는 다른 매개체를 통해 자기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답하는 것"을 말하지요.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에 눈 뜨라"는 이 말은 무엇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혁명적 전환의 메세지입니다.
여기서 '너 자신'은 곧 '인간'으로,철학의 대상과 관심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전환하는 선언이지요.
그 이전의 철학은 만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연철학이었습니다.저마다 '만물의 근원'을 찾아 나섰는데 탈레스는 물,피타고라스는 수(數),헤라클레이토스는 불,엠페도클레스는 4원소(물,공기,불,흙)라고 주장했습니다.이에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가 "자기 자신,즉 인간을 모르면서 자연만 알아서 무슨 소용이냐"며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실제로 그는 자연을 사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인간 문제의 통찰에 온통 관심을 쏟았지요.

그런데 아테네 법정이 소크라테스를 기소할 때 제시한 죄목 가운데 하나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였습니다.결국 소크라테스가 '종잡을 수 없는 말'로 젊은이들의 영혼을 오염시켰다며 사형을 선고했지요.

멜레토스 같은 청년은 "주제넘게도 천상과 지하의
일들을 연구하고,사론(邪論 사사로운 주장이나 이론)을 정론으로 둔갑시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남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며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는데,이런 비방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이 원조입니다.기원전 423년,소크라테스가 46세 때에 초연된 이 희극의 주인공은 소크라테스입니다.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지식 장사를 하는 소피스트로 묘사되는데,심지어 "아들이 부모를 때릴 수 있다"는 궤변(詭辯)을 논증하여 젊은이들을 타래시키는 사악한 궤변론자로까지 묘사됩니다.이 <구름>때문에 악명을 얻은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구름>이 공연되는 동안 소크라테스는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네요.가짜와 진짜를 비교해 보란 듯이.

당시에는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키고 상대방의 주장을 격파하는 변론술이 유행했습니다.재판에서는 변론을 잘해야 유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었으며,민회에서는 연설을 잘해야 정치가로서 명성을
높일 수 있었으니까요.따라서 아테네 젊은이들은
출세를 위해 앞 다투어 변론술을 배웠는데,그것을
돈 받고 가르치는 직업교사가 바로 소피스트였습니다."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한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들은 인간의 주관성을 설파하면서 상대적 다원주의를 지향했는데,갈수록 그것이 지나쳐 극단론이나 궤변으로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앞에 나온 '종잡을 수 없는 말'이란,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철학 방식이라고 밝힌 '산파술(産婆術)'
입니다.잇따른 질문을 통해서 상대방이 "알고 있는 것"을 상기(想記)하도록 해서는 그것이 "알지 못하는 것"임을 저절로 깨닫게 하는 대화법으로,상대방을 아포리아(aporia,막다른 골목)로 몰아붙여 무지를 자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소크라테스는 "이제 스스로 새로운 지혜를 낳을 능력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지혜를 낳는 것을 도와 그것이 진위는 식별할 수 있다"면서,자신의 그런 활동을 어머니의 직업인 산파에 비유한 것입니다.

장황하게 지혜를 설교해온 소피스트들의 방식과는 상반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당대에도 인기를 끌었지만 오늘날까지도 가장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교육법으로 각광받고 있지요.그리스 조각예술 <뮤즈와 대화하는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즐기는 그런 소크라테스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광장에서 젊은이들과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데
한 젊은이가 소크라테스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선생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왜 대답은 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만 하십니까?"

이에 소크라테스가 말합니다.

"나는 자네들이 생각을 분만하도록 돕는 산파 역할을 할 뿐,생각을 분만하는 것은 자네들 자신이라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문답을 통해 저마다 진리에
닿도록 돕는 산파 노릇을 한 것인데,여기에는 주로 반어업과 귀납법이 쓰입니다.소크라테스는 꼬리에 꼬리를 물듯 잇달아 반문을 던지는데,몇 차례 문답이 오가다보면 상대방은 자기도 모르게 무지를 인정하게 됩니다.안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결국 모르는 것,즉 무지의 자각으로 귀납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을 집대성한 플라톤의 저서도 대부분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고,그 대화를 이끄는 주인공 역시 소크라테스입니다.이들 40편에 이르는 대화편 가운데 <소크라테스의 변론>,<프로타고라스>,<파이돈>,<향연>을 플라톤의 4복음서'로 중시합니다.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법정에서 행한 그의 변론을 담고 있는데,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과
플라톤 자신의 견해를 살펴볼 수 있는 핵심 텍스트입니다.

기원전 5세기 후반의 아테네는,민주정치를 꽃피운 페리클레스가 죽고 그리스 내전이 격화되는 시기로 중우정치(衆遇政治)와 과두정치(寡頭政治)가 대두한 가운데 시민사회의 반목으로 고소ㆍ고발이 이어지는 혼란스런 세상이었습니다.소크라테스도 그런 중우정치에 희생된 면이 있지요.

그런 아테네에 일단의 철학자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흘러들어와 관심을 인간과 사회에 두고 "유용한 지식"을 강조했습니다.소피스트라 불리는 그들은 저마다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옳다고 주장했는데,나중에는 궤변을 일삼는가 하면 '족집게 강사'처럼 변론술을 팔아먹고 젊은이들을 오도한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철학의 명제를 세워 아테네 젊은이들을 소피스트들로부터 지키고자 했습니다.소크라테스 역시 인간과 사회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사상을 펼쳤는데,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절대적 진리를 강조했습니다.그것은 개인의 관점에서는 윤리학이고,공동체의 관점에서는 정치학이며,교육의 관점에서는 교육학이며,지혜의 관점에서는 인식론이자 형이상학입니다.

소피스트들을 지식 장사꾼이라며 못마땅해 했던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통해 아테네의 시민사회와 정치를 바꾸고자 했으며,도덕적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윤리의식을 고취시키고 진리를 깨우치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전파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덕에 대한 무지는 모든 악의 원인"이며,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거나 "오직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은 도덕적인 삶"이라는 말로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을 표현했습니다.그는 "아테네가 혼란스러운 원인은 무지 때문이므로
무지를 없애면 혼란은 사라질 것"이라면서 끊임없이 배움에 정진하는 철학적 삶을 살 것을 역설했습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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