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서평
*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다크는 인도의 통치지역인 잠무 카슈미르의 접경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인구는 13만 명으로 면적에 비해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라다크는 레와 카르길로 다시 나눌 수 있는데 레는 불교도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며 카르길은 이슬람교도들의 거주지다. 기독교까지 포함하면 세 가지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티베트의 영향을 받아 문화적으로는 불교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지형적으로는 히말라야를 끼고 있는 고원지대이기도 한 라다크는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독특하고 고유한 문화와 풍습을 가진다.
이 책은 총 3부로 되어있으며 1부에서는 라다크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 가치관 등을 다룬다. 2부에서는 서구화의 영향으로 인해 변화하는 라다크의 문제점들을 보여주며 3부에서는 라다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문제들이 해결되는 과정을 그린다. 나도 책의 순서에 맞춰 글을 쓰고자 한다.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평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평화는 내적인 평화와 외적인 평화를 모두 포함한다. 그들의 전반적인 삶 속에서는 기쁨과 즐거움, 고요함과 여유 등이 느껴진다. 라다크 사람들은 농경과 목축을 통해 식량을 얻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에게 식량과 옷, 집을 제공해주는 자연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검약의 정신으로 인해 라다크 사람들은 모든 것을 낭비하지 않고 사용한다. 사용하고 다 쓴 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일하기 방식인데, 그들은 항상 노래로 일을 시작한다. 일하는 중에도 항상 흥에 젖어있다. '일'이라는 게 그들에게는 부담이나 짐이 아니다. 일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우리와 달리 그들은 일 자체를 즐긴다. 씨를 심고 밭을 갈고, 쪼들의 식량을 먹이는 과정들이 전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할 때도 조급하지 않을 수 있다.
라다크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공존'의 문제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다. 이웃에게 창틀이 전부 배달되어 창틀을 쓸 수 없게 된 소남은 웃으며 "우리는 모두 함께 사는 거잖아요"라고 말한다. 이런 의문이 든다. 라다크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걸까? 공동체를 위해서 소남은 본인의 화를 참는 걸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됨으로써 더 큰 안정감을 얻는다. 이는 개인이라는 개념보다 폭넓게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수많은 타인들과 이어져 있는 '나'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자비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라다크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의사와 샤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물론 의료체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치료는 민간요법과 주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정밀한 검사와 진단을 통한 기계적인 처방을 하는 우리와 달리 라다크의 의사 암치는 전해 내려온 지식을 바탕으로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처방을 한다. 보이는 건 엉성해 보이지만 쳐방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농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들은 감각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업무는 매우 정교하고 규칙적인 형태를 이루었다. 이는 측정하지 않아도 그것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런 라다크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점차 서양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라다크에 유입된 서구 문화와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라다크인들에게 하나의 우상으로 다가온 듯하다. 그리고 '비교'의 대상이 생기자 그들은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돈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서구식 사고도 유입되었다. 라다크인들이 가지고 있던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지각능력은 무지한 것으로 취급받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라다크의 청소년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다. 그들은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했다. 가족과 이웃들과 보내는 시간이 이제는 가치없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라다크의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붕괴됐다. 라다크인들의 느긋하고 여유롭고 조화를 이루던 삶이 서구화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것을 보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1부에서 묘사된 라다크인들은 상대적 가치를 중시해 쉽게 열등감에 빠질 사람들이 아니었다. 서양인들이 입고 있는 옷과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라다크인들의 문화, 생활양식, 사고방식은 변화되었다. 서구화의 환상이 그만큼 매력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온다는 뜻일까? 물론 책에서 묘사된 것보다는 점진적으로 변화되었을 수도 있다. 또 라다크의 문화와 사고체계를 습득하지 못한 라다크의 청소년으로부터 그 파급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이미 라다크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어른들은 서구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들의 생활을 유지하며 사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라다크인들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겠지만 결론은 하나다.
그들의 삶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책의 저자인 헬레나 호지는 이 변화의 모습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3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반개발'이 등장한다. 반개발의 실상은 참 흥미롭다. 반개발의 우선적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상태에서 스스로 자율적인 결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헬레나 호지는 자급과 자부심을 강조한다. 현 라다크의 변화는 사실 라다크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제한된 정보 하에서 서구화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도 서구화의 어두운 면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기존의 질서만을 고수할 수도, 무작정 발전만 추구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등장하는 개념이 '지속가능'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생명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며 이뤄지는 발전이다. 호지는 이를 '라다크 프로젝트'로 실천하고, 이를 통해 파괴없는 개발이 가능함을 보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라다크의 트롱브 벽 태양열 난방시스템이다. 태양열 시스템은 현대 과학에 정점에 있는 기술 중 하나다. 하지만 이를 장착한 트롱브 벽은 환경을 해치지 않는다. 또한 주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룬다. 1부와 2부에서는 전통과 현대가 대립을 이룬다면 3부에서는 그것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변화는 그 자체로는 가치를 포함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라다크 프로젝트의 사례들은 가치있는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지만 가치관의 혼동이나 환경파괴를 가져오지 않는다. 나는 라다크 프로젝트의 과정들을 읽으며 표현할 수 없는 공동체의 느낌을 다시 한번 받을 수 있었다. 라다크 사람들의 기존 생활방식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었지만 이 긍정적인 변화 방식마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어떤 것들을 파괴하고 있는가? 정말로 우리는 그 방법밖에 사용할 수 없었을까? 시간은 더 걸릴지라도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현대 기술을 찾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