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마음 있는 사람> 서평
*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기현 작가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이다.
내게 소설을 읽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주로 읽는 책은 고전이나 정보 서적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읽고, 주제를 찾고 그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써내려 가는 게 익숙하다.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그 안에 담긴 의미나 주제 의식, 그런 것들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게 옳은 방식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에 이 책은 굉장히 난해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빅풋>에 나오는 새미는 발이 290밀리미터다. 사라진 새미의 행방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발밑의 일>에서는 갑자기 소인들이 등장한다. <검은 강에 둥실>에서는 멧돼지들이 인격이 있으며, 도굴꾼의 만행인 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무덤에 생긴 구멍은 저승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갑작스러운 전개와 뭔가 찝찝한 듯 여운이 남는 결말들.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뭔가 완성된 느낌을 받는데, 각 단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 상상해 볼 법한 일들이 현실에, 현실처럼 펼쳐지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읽었던 설화나 신화의 내용이 현대 버전으로 재구성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설화나 신화라고 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단순한 판타지라고 느껴진다기 보다는 뭔가 있을 법한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분명 불가능한 일이지만 왠지 모르게 또 있을 법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 가족은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는데, 저녁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어둠이 깔린 복도를 지나 집으로 갈 때면 비상구에 귀신이 나오지는 않을까 무서웠다. 그래서 괜히 무섭지 않은 척 들고 있던 가방을 휙휙 휘두르며 뛰어간 기억이 있다. 등교가 힘들어 하늘을 날아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정각이 되면 시계에서 튀어나와 뻐꾹거리던 새가 무섭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또 잘나가는 무리의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그렇게 일상에서 뭐 하나에 관심이 생기는 순간 무한한 상상력이 피어나던 때가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시절을 떠오르게 해준다. 일상적인 것들에서도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시절. 소설의 결말이 썩 개운치 않은 것은 그것이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상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상상할 거리를 남겨주기 위함일까.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상상을 펼치는 일은 다소 무의미해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쳇바퀴같은 삶을 살며 피폐해지기도 하고, 자극적인 도파민을 원하는 우리에게 가장 값싸고,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을 채워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