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서평
*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의 주요 인물이자 공산주의자들인 첸과 기요, 카토프, 에멜리크 등은 장제스를 암살하고 국민당에 대항하기 위해 뭉치고 소설은 장제스의 암살 계획 과정, 즉 혁명의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책의 내용을 읽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소설 자체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진행되지만 '인간의 조건'의 대부분은 각 인물들의 사유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소설의 모든 내용은 모두 죽음과 관련이 있다. 거사를 앞두고 무기의 수급과 관련한 장면들은 죽음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들의 거사는 굉장히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첸은 장제스의 암살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던져 결국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거사는 수포로 돌아가고 체포된 이들은 화형에 처해진다. 결말까지도 비극적인 죽음인 것이다.
그런데 이 죽음에 대한 인식은 각 인물들에게 다르게 발현된다. 테러리즘을 인생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첸, 동료들와 함께 죽음을 이기고자 하는 기요 등. 아이러니한 사실은 죽음이 오히려 의미를 발생시키는 과정이다. 보톤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명제를 통해 허무감을 느끼게 된다. '어차피 죽는다면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종점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면 지금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인물들에게 신념을 불러 넣어준다. 다른 책들에서는 죽음의 인식을 통한 실존의 위기를 바탕으로 '한 번뿐인 인생, 멋지게 살아보자'하는 메시지를 많이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이들이 실존의 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사색하며, 고독을 느끼고 그러한 삶 속에서 허우적대다 무언가라도 붙들기 위해서 신념을 만드는, 전자에 비래 다소 수동적인 신념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죽음은 결국 삶을 희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무의미가 오히려 의미를 만들어내고 신념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아이러니를 넘어서 신비로웠다. 그리고 신념은 우리가 다시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점은 사색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사색하고 고민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이러한 사색이 신념과 사상을 만든다. 사색은 나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타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허무 속에서 피어나는 개개인의 신념과 사상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색하지 않는 삶은 나의 신념을 바탕으로 타인이 틀렸다고 규정한다. 서로의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한 사색과 죽음에 대한 숙고 없이는 깨달을 수 없다.
물론 누군가는 사색의 결과가 아집과 고집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나 나는 그것이 충분한 사색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색하는 인간은 죽음에 대해 숙고하는 인간이며, 인간의 유한성과 삶의 덧없음을 한 번쯤은 깨닫는 사람이다. 그 안에서 절대적인 인생의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며, 설령 답이 있더라고 그것을 자신이 발견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요즘 사회를 보면 이러한 사색이 드물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넘치는 지식들은 정작 우리의 지적 허영심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용되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 댓글, 연예인을 향한 맹목적인 욕설과 비방. 최근 몇년 동안에는 특히 남녀 갈등이 심화되었다. 좁은 프레임으로 서로를 규정하고 비방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봤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의 조건>은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 죽음과 숙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는 듯하다. 타인을 이해하는 삶, 나로 비추어 타인을 헤아리는 삶, 죽음을 돌아보며 후회할 일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구태여 힘을 쏟지 않아도 될 일에 힘을 쏟지 않는 삶.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