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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 Oct 20. 2024

뜨거움은 덧없는 것일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책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의 여주인공인 폴은 로제에게 지치기 시작한다. 연인 로제는 자유를 추구하며 구속을 싫어하는 인물이다.

서로의 사생활에 개입하지 않고 서로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관계.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로제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필요할 때만 폴을 만나고, 처음 만난 이성과 놀고 마시고, 하룻밤을 보내는 식으로 말이다.

폴은 로제를 사랑할수록 집착하게 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폴은 자신이 로제를 정말 많이 사랑하며 그와의 모든 일상, 규칙적이고 반복되는 생활에 이미 완전하게 적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좋으면서도 외로운 감정에 폴은 혼란스러워한다.


아니 그녀는 로제에게 서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다신은 더 이상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닌가. 자신이 그가 몹시 싫어하는 악착스럽고 독점욕 강한 여자가 된 것 같다는 말을 그녀는 그에게 할 수 없으리라.


이런 상황 가운데, 실내장식가인 폴은 그가 맡은 고객 '반 덴 베시' 부인의 집에서 부인의 아들 시몽을 마주치게 된다. 25살의 젊고 잘생긴 수습 변호사 시몽은 폴을 보고 사랑에 빠지고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심지어 로제와 폴이 함께 있는 자리에도 나타나 합석을 한다. 

폴은 연인도 있을뿐더러, 시몽에게 모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의 눈에 시몽은 혈기왕성하고 패기 넘치는, 아직 사랑을 잘 모르는 아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폴과 길을 걷던 중 재판 과정을 흉내 내며 시몽은 말한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 

한편 로제는 메지라는 새로 알게 된 여성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와의 데이트를 위해 출장을 간다고 폴에게 거짓말을 한다. 폴은 항상 로제와 함께 보내던 주말을 외로움 속에서 보내고, 시몽은 그러한 틈 사이로 스며들 듯이 다가온다. 폴은 일요일 오전, 시몽에게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는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폴은 미소를 짓게 된다. 학생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할 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이 질문에 대해 폴과 시몽의 차이를 알 수 있는데 폴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한다.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뭔지.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고민들은 결국 폴이 사랑을 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반면 시몽에게는 그녀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아닌지가 상관이 없다. 그녀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브람스는 일종의 구실일 뿐이다.


브람스에 대한 다른 반응과는 별개로 폴은 자신과 항상 곁에 있고 자신에게 친절한 시몽에게 점차 마음을 연다. 뒤늦게 알게 된 로제는 이 상황을 견제하기 시작하고 폴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한다. 세 남녀의 갈등은 점차 깊어진다.


그녀는 그가 거기 와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도 외롭지 않았던가! 로제는 영화에 미친 젊은 여자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중략) 이 청년이 없다면 그녀는 극도로 불행하리라.


그러나 결국 폴은 로제를 선택한다.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로제를 가리켜 '그'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그들 두 사람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중략) 어쩌면 그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중략)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


젊은 사랑으로 대표되는 시몽의 열정적이고 친절하며 불같은 사랑.

그리고 폴이 선택한 안정적이고 반복적이며, 자칫 지루해 보이지만 없으면 지독히 외로운 사랑.


폴은 시몽에게 흔들리지만 그것은 외로움의 빈자리를 잠깐 채웠을 뿐, 결국은 이전의 오래된 사랑을 선택한다. 여러 번의 연애를 경험하며, 뜨거움의 덧없음을 깨달아서일까? 익숙함에 속아서일까? 아니면 오랜 연애를 통해 형성된 무언가 둘 사이의 관계를 보이는 것보다 단단하게 지탱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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