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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Sep 28. 2019

1화. 내가 베트남에 처음 왔던
2011년에는



내가 베트남에 처음 왔던 2011년에는 


대형마트에서 비닐봉지를 3겹으로 포장해주어도 봉지가 내용물의 무게를 못 이겨 찢어졌고 사람들은 줄을 서지 않아 기차 매표소에서 1시간을 기다려도 내 차례가 오지 않았으며 제1 경제 도시 호찌민 대낮 시내 길거리에서 소변을 보는 남자들이 늘 있었다. 사람들은 점심 먹고 낮잠을 자야 해서 사무실 책상 밑에 누워 있고 은행도 점심에는 문을 닫았으며 해마다 물가 상승률은 10% 내외로 폭등했고 연말이면 미국 달러 대비 베트남 동은 평균 13% 가치 평가절하 되었다. 음력 설에는 이불 보따리를 오토바이에 한 가득 싣고 3박 4일 귀경길을 떠나는 사람들로 도로는 북새통을 이루었고 설날연휴가 끝나고도 고향에서 직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종업원들 때문에 공장과 식당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 2014년 베트남은


비닐봉지 한 장에 아무리 무거운 걸 담아도 찢어지지 않게 되었고 베트남 사람 누구나 당연히 줄을 섰으며 새치기하는 사람은 주변의 심한 타박을 받고 줄에서 쫓겨났고 음력 설에는 비행기를 타고 고향 가는 사람들로 공항은 복잡해졌으며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외국인들로 가득했던 단골 고급 레스토랑에는 베트남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으며 점심 먹고 낮잠을 자는 사람들은 없어졌고 점심 때에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자국 모바일 메신저가 시장 점유율 1등을 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국내 물가 상승률은 2~3% 내외로 안정화되었고 지속적인 수출 증가세로 외환 보유고가 늘어나 달러 대비 환율은 한 자리수로 하향되었으며 금융거래를 불신하던 사람들은 은행을 이용해 계좌를 열고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고영권의 도시풍경


내가 베트남에 처음 왔던 2011년에는


호찌민 길거리 허름한 카페며 식당에서조차 와이파이는 무료였고 나도 쓰지 않았던 스마트 폰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전 세계에서 페이스북 가입자 증가율이 가장 높았고 시골 국도변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생수 한 병, 과일 한 꾸러미라도 무엇인가를 팔고 있었으며 얼마 안 되는 급여일지라도 자녀의 미래를 위해 소득 30% 이상을 교육비에 쏟아 붓고 있었고 아침 6시에 출근하는 부지런한 사람들로 도로는 꽉 찼으며 관공서는 아침 7시 30분부터 업무를 시작했고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인종 간의 갈등이 없고 자신이 동성연애자임을 밝혀도 비난하지 받지 않는 개방적인 나라였다.




2019년 지금, 베트남은


길거리 여느 허름한 카페나 식당은 여전히 와이파이가 무료이고 국민 대다수가 스마트 폰을 사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페이스북 이용자가 가장 많은 나라 중의 하나이고 밀크티 하나, 도시락 한 개도 모바일 주문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서 사 먹으며 모바일로 금융 거래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아세안에서 이커머스 마켓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 되었고 여전히 시골 도로 어디에서든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팔면서 온라인에서도 물건을 팔고 있으며 자식의 미래를 위해 여전히 많은 돈을 교육비에 쏟아 붓고 있고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민족 간의 갈등이 없으며 게이의 결혼이 불법이 아닌 개방적인 국가이다. 


그리고 베트남은 이제


동남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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