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 베트남 언론들은 304조 베트남동 (한화 16조4천억원)을 횡령한 베트남 최대 부동산 재벌 반 띤 팟 (Van Thinh Phat) 그룹 회장의 기소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22년 10월 불법 채권 발행으로 전격 체포된 반 띤 팟 그룹의 쯩 미 란 (Truong My Lan) 회장은 자신과 특수관계자들이 최대주주로 있는 사이공상업은행 (SCB)에서 유령 회사 1000개를 통해 불법 허위 대출 받아 가로 챈 혐의이다. 304조 베트동은 베트남 전체 GDP의 5%헤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22년 10월 당시 이 사건으로 인해 베트남 금융당국은 고강도의 기업 부실 대출을 수사해 추가로 몇몇 건설사와 식품 대기업 회장 일가의 불법 대출을 적발해 전원 구속했다. 불법을 엄단하는 중앙정부의 단호한 조치는 명쾌했으나 이로 인해 부동산 개발업체와 건설사에 대한 대출이 중단되면서 신용 경색 위기를 불러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베트남 4위 규모 건설사이자 호치민 최대 건설사인 노바랜드(Nova Land)를 비롯한 수 많은 건설사와 부동산 개발사들의 주가가 70% 이상 폭락하고 부도 직전의 상태에 몰렸다. 23년 상반기 베트남 전국에서 사업이 중단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는 1,200건으로 모두 800조동에 (한화 43조억원) 달했다. 화들짝 놀란 베트남 당국은 3월 15일 1%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효과가 없자 15일 만에 추가로 0.5%를 추가로 인하하고 그러고도 5월과 6월 한 달 간격으로 각각 0.5%를 또다시 금리 인하했다. 3개월만에 금리를 2.5%나 인하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위기에 몰린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미분양 물량을 30%에서 최대 50%까지 할인하며 최대한 물량을 털어내려고 애썼다. 일부 건설사는 할인 금액 중 일부를 회사 주식으로 내주기도 하고 갚지 못한 채권을 개발이 중단된 부동산으로 맞바꾸자고 협상하기까지 했다. 베트남 일간지 뚜오이 쩨(Tuoi Tre)의 8월 보도에 따르면 22년 말 기준 베트남 은행들의 전체 대출 중 21%가 부동산 관련된 것으로 각 은행들도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담보자산 매각에 나섰다. 베트남 정부는 얼어 붙은 건설 업계를 살리기 위해 비농업 토지 취득세와 다주택 소유에 대한 과세 및 양도세 인상 계획 모두 폐지했다.
베트남 건설 업계의 위기로 매력적이고 값싼 물량이 넘쳐나자 외국 투자자들은 베트남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베트남 일간 뚜오이 쩨는 싱가포르 부동산 투자 개발 업체 케펠랜드 (Keppel Land), 프레이저스 프로퍼티 (Frasers Property)와 태국의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와 (WHA) 그룹, 태국의 최대 유통기업 센트럴 리테일 (Central Retail) 그룹 등이 적극적으로 주거지, 상업용, 산업용 부동산 등의 프로젝트 M&A를 끝내거나 계속해서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1992년 베트남에 진출한 케펠랜드는 지분 20%를 보유한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이 최대주주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는 약 123억달러 중 베트남 비중은 12.4%로 15억 달러(2조억원)를 베트남에 투자하고 있다. 케펠랜드는 베트남의 부동산 가격이 매력적으로 하락하자 올 해 3월 토지를 포함한 총 개발 비용 4억 4300만달러 짜리 프로젝의 지분 49%를 1억 3800만달러 (1800억원)에 인수하고 7월에는 2025년 완공 예정인 쇼핑몰 지분 투자에 5,120만달러(한화 670억원)를 인수했다.
케펠랜드는 현재에도 다양한 프로젝트 인수를 위해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케펠랜드의 CEO인 로친화 (Loh Chin Hua)는 지난 3월과 11월에 두 차례에 걸친 Nikkei Asia와 인터뷰에서 ‘2017년부터 중국 자산은 매각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으로 부동산 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폐기물 에너지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에 진출한지 10년이 넘은 한국계 건설사와 투자자문사에 근무하는 복수의 전문가들은 ‘홍콩에서 빠져나간 자본이 싱가포르를 통해 베트남에 대거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화교 자본들이 연말까지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 끈질긴 협상을 하고 있다’고 상황을 분석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 회사 피치는 지난 7월 18일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게시한 보고서에서 ‘베트남 부동산 문제는 심각한 단계는 넘겼다’며 ‘부동산 부문의 금융 거품을 억제하려는 베트남 정부가 시장을 안정 시켰다’고 평가했다. 또한 ‘부분적으로 향상된 투명성과 문제에 대하는 정책이 향후 (국가) 등급을 상향 시킬 수도 있다’며 베트남 정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 했다. 지난 5월에 긍정적인 전망과 함께 부여한 베트남 신용등급 BB는 견고하다며 부동산 문제가 베트남 신용 등급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10월 27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또다른 글로벌 신용평가사 S&P 글로벌의 동남아시아 기업 평가 책임자인 장 자비에르 (Jean Xavier) 역시 ‘베트남 부동산 문제는 더 이상 대규모 확산될 위험은 없다’라고 밝혔다. 자비에르는 베트남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약 25%에 달하며 주로 모기지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베트남 고용이 견고해 부실 위험은 없다고 분석했다. 2022년부터 불거진 중국의 초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 완다, 비구이위안의 연쇄 부도 위기로 베트남이 또다른 중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자비에르는 ‘베트남은 중국만큼 부동산 공급 과잉 상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베트남은 젊은 인구와 중산층 확대로 인해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높게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전망은 더욱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부동산 투자할 때에는 차분하게 끈질긴 협상을 통해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기 보다는 오너나 경영진이 즉흥적으로 판단해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10여년 전 국내 굴지의 모기업은 하노이에 100억이 넘는 고급 아파트를 짓겠다고 1천억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가 거의 대부분을 손해 보았다. 또다른 모 대기업은 상업 시설로 지은 건물을 호텔로 변경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 낭패를 본 적도 있다. 베트남 부동산 개발에 투자하려는 기업들은 서두르지 말고 꼼꼼하게 살피고 법적인 문제가 모두 해결된 프로젝트 중심으로 살펴 보는 화교들의 투자 방식을 잘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