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얘기했던 대로 밖에서 아이들을 놀리기로 했다. 마침 아이들이 자전거도 타고 싶다고 해서 다들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우리 집에 가서 딸의 자전거를 챙겨 오기로 했다. 딸의 공허한 눈동자를 맞닥뜨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Y네 집을 나서자마자 그간 간신히 움켜쥐고 있던 눈물을 흩뿌리며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행여나 중간에 아는 사람을 만날까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최대한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Y네 집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도, 우리 집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딸의 애처로운 눈빛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집에 가서 마음을 추스르고 딸의 자전거를 챙겨서 Y네로 돌아갔다. 10~20분 정도 되는 시간이었지만, 딸의 얼굴이 새삼스레 반가웠다. 딸이 Y와 시간을 보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내가 엄마는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1.5인분이라도 하는 아빠가 돼서 그 미소를 지켜주겠다고. Y아빠, Y, 딸과 나까지 4명은 자전거, 줄넘기 등을 준비해서 내려갔고, 그사이에 Y엄마는 저녁 준비를 해줬다.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자전거도 타고 Y아빠가 준비해 준 라켓 공놀이도 같이 해봤다. 딸과 Y가 하는 게 원래 목표였지만,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딸은 당연하게도 공놀이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아빠인 내가 대신 참여했고, 나 역시도 운동 신경이 떨어지는 탓에 원활한 랠리가 이어지지 않아 공놀이는 이내 지지부진 마무리됐다. 운동 신경과 적극성이 떨어지는 딸과 달리 Y는 몸으로 하는 놀이에 매우 익숙해 보이고 능숙했다. Y의 부모님은 예전부터 Y를 데리고 바깥 활동을 많이 해서, 테니스, 스키 외에도 다양한 종목들을 섭력했다고 했다. 나는 부럽기도 하고 기회가 되면 그들의 다양한 활동에 꼽사리 끼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Y아빠가 챙겨온 줄넘기 2개를 딸과 Y가 각각 하나씩 들고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딸은 아내와 나를 닮아서 그다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유치원 학예회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무대에 나와서 공연을 하면 다른 친구들의 위치 선정에 대한 잔소리만 하다가 막상 본 공연에 돌입하면 엇박자를 내면서 전체 퍼포먼스보다 한 박자 늦게 움직이곤 한다. 이런 딸에게 줄넘기를 가르쳐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줄넘기를 하기 위해서는 뛰는 동작과 줄을 뒤에서 앞으로 가져오는 동작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손목 힘을 이용해서 줄을 앞으로 넘겨야 하는데 아직 딸에게 그런 요령과 힘이 부족해서 팔 전체의 회전을 통해서 줄을 몸 앞으로 넘기면 이미 중심이 무너져서 줄을 뛰어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튜브에서 또래의 친구들이 줄넘기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으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표본으로 보여준 사람들과 본인은 그저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빠인 내가 하는 줄넘기는 어른이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한 듯한 뉘앙스를 잔뜩 풍기기도 했다.
그런 딸이 처음으로 Y가 능숙하고 수려하게 줄넘기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10번, 20번이 넘는 뛰어난 수행 능력을 동반한 씽씽이 줄넘기였다. 딸은 그 자리에서 메두사를 본 사람처럼 돌로 변해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자기가 표준으로 여겼던 7살의 줄넘기 실력을 뛰어넘고도 남았던 화려한 모습을 목격하자마자 구석으로 도망가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유 모를 농성을 펼치기 시작했다. 딸은 자존심이 센 아이인 탓에 못 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했다. 자기가 평소에 줄넘기라고 생각했던 행위를 선보이면 Y의 그것과 너무도 비교될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가만히 있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너무도 친한 친구였기에 부족한 모습을 들키는 게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
원래라면 아내가 딸의 이런 섬세한 감정 동요 사태를 도맡아서 진정시키곤 했다. 나로서는 이런 상황들을 당최 이해하기 힘들었다. 딸이 평소에 올바른 줄넘기 사용법을 알려줄 때는 자기 편한 대로만 하겠다고 하면서 거절했으니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고 자존심 상하는 것은 자기 고집에 의한 당연한 충격이라고 여겼기에, 내가 특별히 위로할 거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였다면 딸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런 농성은 같이 놀러 나온 Y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 부분을 침착하게 알려줘서 설득하려고 했을 것이다. 나는 애초에 이런 것이 설득의 영역이라는 것을 공감하지 못하기에 인내심도 발휘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떻게든 아내의 역할까지 도맡아서 수행해야 했다. 우선, 1단계로 구석에서 잔뜩 토라진 딸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Y는 평소에 줄넘기 연습을 많이 했으니까, 저렇게 잘할 수 있는 거야. 너도 나중에 아빠랑 같이 연습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줄넘기가 하기 싫으면 다른 거라도 하자.”
“...”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아내가 더 달래거나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줬을 텐데, 옆에서 Y와 Y아빠가 처음 겪어보는 사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치 보면서 기다리고 있어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얼른 가자. 오늘 Y랑 같이 놀기로 했는데,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알았어… 힝…”
결국 마지못해 놀이 대열에 합류하는 딸을 이끌고 Y 쪽으로 다가갔다. 연습의 괴로움만 알고 그의 결과로 오는 달콤한 열매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모양이었다. 아내가 있었다면 이런 딸을 잘 달래줬을 텐데, 성질이 급한 나는 그게 쉽지 않았다.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진 우리 가족은 이런 사건들에서 허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이가 완벽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같이 성장하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나 보다.
우리는 저녁 시간에 바깥 놀이를 하러 온 다른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조금 더 보내다가 저녁 먹으러 다시 Y네 집으로 향했다. 그사이 Y엄마는 내가 힘내야 한다며 본인이 맛있게 먹었다는 주위의 소고기 수육 가게에서 수육과 꼬리찜을 배달 주문해 줬다. 부드러운 소고기와 시원한 육수가 나의 심신을 달래줬지만, 그들이 딸의 저녁상도 차려주고 내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마음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가 항상 부담스러워하는 술은 병원에서 언제 호출이 올지 모른다는 핑계로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원래도 술을 자발적으로 마시지 않지만, 아내가 병상에 누워 있는데 술을 마신다는 것은 나 자신이 허용하기 힘들었다. 그들도 나를 충분히 이해해 줬고, Y엄마와 Y아빠는 둘이 약간의 반주로 막걸리를 기울이면서 꼬리찜을 즐겼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감사함은 예상한 곳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뜬금없이 튀어나오곤 한다. 감사함을 알고 만끽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 내가 지녀야 하는 덕목이다. 빚이라고 하면 주위 분들이 부담스러워하겠지만 갚아야 할 고마움들이 점점 쌓이고 있다. 아내와 함께 보은할 기회가 생기길 기원해 본다.
나를 있는 힘껏 배려해 준 Y엄마와 아빠 덕분에 나는 편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고, Y엄마는 한술 더 떠서 Y와 함께 딸을 샤워시켜주기까지 했다. 남의 집 딸의 샤워를 시켜 주는 것은 남자 어른인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Y아빠와 식탁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셋이 아이들의 머리도 말리고 로션도 바르더니 또 순식간에 Y방에 들어가서 셋이 앉았다. 밖에서 유심히 들어보니 Y엄마가 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마냥 밖에 앉아 있기가 미안해서 조심스럽게 방문을 살며시 열어봤는데, 마치 작은 케이크에 소중한 촛불 하나 꽂아서 조촐한 생일 파티를 개최한 친구들처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딸은 거의 열흘 만에 엄마와 비슷한 여자 어른이 읽어주는 책을 듣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딸이라 그런지 두 눈은 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딸이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차마 안 읽어줘도 된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조금만 읽다가 집에 가자는 짧은 말과 함께 그들만의 공간을 존중해 주는 차원에서 다시금 문을 닫았다. 감격과 감사함이 한데 어우러져 눈시울과 콧잔등에 따뜻함으로 전달되었다. 잠시 진정할 시간을 가진 후에 Y아빠에게 돌아가서 잠시 중단되었던 이야기를 다시금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혼자라 외로웠지만, 그 빈자리는 딸이 느끼는 엄마의 부재에 한참 못 미친다고 확신했다. 이렇게라도 딸의 욕구가 일부라도 채워졌을 거라고 자기 위안할 수 있게 도와준 Y네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내가 딸에게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줘도 아내와 같지 않았을 것이고, 남자 어른과 여자 어른이 채워줄 수 있는 감정적인 부분이 분명 다를 것이다. 내가 힘닿는 데까지 딸이 느낄 엄마의 빈자리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아빠가 절대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게 잔인하고 불편한 현실이자 진실이었다. 홀아비처럼 지내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진정한 홀아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