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색무취 Sep 30. 2024

10-1. 불편한 진실

주말에는 중환자실 면회를 갈 수 없었고,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병원에 전화해서 아내의 상태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있는 가족들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다. 원래의 일정대로라면 부산에 내려가야 했을 엄마는 당신의 아들과 손녀딸이 안타까워 서울에 머물고 있었는데, 환갑이 넘은 엄마에게 주말 내내 같이 있어 달라고 하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제공하고자 하는 엄마가 집에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엄마가 참여할 수 없는 일정을 만드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마침, 감사하게도 이번 주 내내 Y네가 가끔 안부를 물으면서 토요일에 별일 없으면 딸과 Y가 같이 놀게 해 주자며 초대해 줬다.


예상과 다르게 아내가 일주일 내내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다 보니 딸에게 있어 엄마의 부재가 길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딸 입장에서는 하루 이틀이면 돌아올 줄 알았던 엄마는 함흥차사고 주말이 되도록 소식도 연락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떻게 딸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저 우리 삶에서 아내를 도려내고 지내도 되는 건가. 아니면 어떻게든 딸과 바쁜 나날들을 보내며 엄마 생각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인가. 이건 어찌 보면 딸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딸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나의 신뢰에 대한 문제였다.


부모가 된 지 거의 6년이 되어간다. 아이를 키우면서 오히려 나에 대해서 배우고 성찰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는데, 아내가 없어진 상황에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것 같았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는 게 최우선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상황을 무마하고 회피하기에 적절한 거짓말들을 아이에게 이어 나가면 된다. 오히려 순간적인 기지만 발휘할 수 있다면 훨씬 편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로 시간을 번다고 해서 상황을 언제까지고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새로운 사건이나 감정을 맞닥뜨릴 기회조차 아이에게서 앗아가는 것은 부모 자신의 불안함을 감추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결국 아이가 견딜 수 있을지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견디고 감내하는 아이를 보게 될 부모 자신을 신뢰하는 문제였다. 나는 딸이 겪어야 할 일을 내가 통제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숨어 지내기보다는 그동안 해왔던 일정들을 소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딸과 함께 옆에 서서 다가오는 파도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기로 했다. 자칫 잘못하면 이것이 우리 가족의 새로운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


딸은 루틴이 매우 중요한 아이다. 딸은 새로운 사건이나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이 심한 편인데, 이는 성격도 입맛도 예민한 탓이 크다. 새로운 것들에 기대는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에 대한 기회비용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 입맛이 예민한 탓에,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크다. 딸은 살면서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혀와 뇌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경우가 많이 없기에, 먹어본 음식 중에 괜찮은 인상을 남긴 것들이 더욱더 소중하다. 삶의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편하게 해 봤던 것들에 대한 집착이 있고, 어떻게든 놓치고 싶지 않아 한다. 이는 어쩌면 나의 자기소개 같기도 하다. 딸에게 가장 중요한 습관은 바로 엄마였다. 엄마의 체온과 품이 가장 익숙하고, 아침에 깨자마자 엄마한테 달려가서 어리광 피우는 게 자연스럽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빠보다는 엄마를 먼저 찾고, 아빠한테 못 하는 비밀 이야기들을 아빠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엄마에게 술술 털어놓는다. 나라면 잔소리를 늘어놨을 일에도 아내는 딸 옆에 앉아서 조곤조곤 설명해 주면서 잔소리인지 조언인지 구분하기 힘든 충고들을 부드럽게 늘어놓는다. 딸의 인생에서 분명 아빠보다도 아내가 가장 익숙한 존재였을 테다.


평소 같으면 아내와 함께 챙겼을 딸의 주말 일정도 이제는 온전하게 내 몫이 되었다. 오전에 운전기사처럼 태워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던 문화센터도 이제는 선생님에게 책임지고 인계해 줘야 하고, 교재도 챙기고 발레 신발도 신겨 줘야 했다. 아내의 상태와 더불어 평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다 보니 내 속의 여유는 여름날 아스팔트 위의 물방울처럼 금세 증발했다. 딸이 발레를 하러 갔던 50분은 참으로 짧았다. 문화센터 바깥을 잠시 산책하고 나니 금방 딸을 픽업해야 하는 시간이 됐다. 딸과 나는 써브웨이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집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내가 운전에 집중하고 있으면 아내는 블루투스로 딸이 듣고 싶어 하는 동화나 음악을 들려주곤 했는데, 이제 모두 내가 해야 했다. 당연히 운전 중에 폰을 조작할 수 없으니 최대한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세팅을 해놓고 운전해야 했다. 3명이 타고 있어야 할 차에 2명만 앉아 있는 바람에 묘한 불균형이 생겼다.


집에 도착한 딸과 나는 Y네에 놀러 가기 전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혼자 있을 시간을 갖게 되면 딸이 엄마가 생각나서 찾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집에서 TV랑 책도 보고 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잡생각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나와 아내가 그간 행했던 육아 행태가 여기서 빛을 발했는지도 모른다. 딸은 살면서 엄마랑 아빠가 안 된다고 했던 일이 단 한 번도 되는 걸로 바뀐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때문인지 딸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 실망할지언정 떼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동사무소에서 항의하는 사람들이 여러 차례 질문하는 것은 결국 미련에 기반한다. 안 된다고 안내받았던 일이 진짜 안 되는 거냐고 5번씩 재차 물어보면 갑자기 되는 경험을 했기에 거절을 당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질문을 반복한다. 기어이 해내고야 만다. 딸은 미안하게도 고맙게도 이런 미련들은 없어서 엄마를 볼 수 없다고 했더니 금세 포기했다. 속으로 어떤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오지랖 넓게도 나와 딸을 챙겨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사놓은 다량의 과일을 손에 들고 오후 3시경에 Y네로 넘어갔다. 유치원에서도 단짝 친구인 딸과 Y는 만나자마자 당장 Y의 방으로 들어가서 신나게 까르르 거리며 놀기 시작했다. Y네는 현관을 거쳐서 들어가면 왼쪽에는 Y의 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거실이 있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정면에 큰 통창이 있고 그 앞을 등지고 앉을 수 있는 벤치와 나무로 된 6인용 테이블이 하나 있다. Y의 방으로 Y와 딸이 사라지고 나서 나는 Y엄마와 Y아빠랑 자연스레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이 방에 들어가서 노는 동안, 나는 자연스레 통창을 등 뒤에 두고 Y의 방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최근 열흘간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알려줬다. 가끔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알리긴 했지만, 아내의 발병, 입원, 전원 등의 전체 스토리는 몰랐을 그들이기에 실타래 풀 듯 한 번에 읊어줬다. 이야기를 한참 들은 Y엄마와 Y아빠도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본인들의 경험담을 공유해 주기 시작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이를 주변 지인들과 공유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우리와 공유하지 않았을 뿐이지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 건강 이슈가 있는 사람을 두고 있었다. Y엄마 같은 경우에도 호흡기 질환이 있어서 흉강경 수술을 했었고, Y의 할아버지도 심혈관 수술 합병증으로 인해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남들에게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각자의 아픔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라고 엄청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우리 일이 현재 진행형이라서 지금 당장 가장 아플 뿐이었다.


Y엄마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공유해 주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본인에게 개흉 수술을 권하는 병원 대신 흉강경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 위해서 분주히 노력했던 에피소드, 수술하기 전에 두려움에 떨면서 숨 참았던 에피소드 등을 전해주면서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심어주려고 무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Y의 할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도 해줬다. Y의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에 꽤 오랜 시간 있었는데, 24시간 조명이 켜져 있고,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탓에 컨디션이 악화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차도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아내의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Y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Y엄마는 본인이 했던 가장 중요한 결정에 관해서도 얘기해 줬다. 중환자실에 2주 넘게 있으면서 병의 진전은 막았지만, 섬망 증세가 생기고 의료진들 적대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는 등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환자의 정신 건강이 우려되어, 병세가 악화할 경우에는 보호자가 책임진다는 전제하에 무리해서 일반실로 옮겼더니 컨디션이 눈에 띌 정도로 개선됐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태껏 아내의 병세 회복에만 집중한 탓에 열흘가량 중환자실에 누워 있기만 했던 아내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나만의 싸움에만 심취해 있었다. 어떻게든 아픈 사람을 낫게 하겠다는 생각에 집중하느라 정작 환자 본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아무에게도 명시적으로 알리지 않았지만, 어제 회복의 희망까지 봤는데도 병마와의 대결에만 치중하고 있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는 일반 병실로 옮기는 것에 대해 담당의의 의견을 문의하기로 마음먹게 된 순간이었다.


여전히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문을 바라보며 아내의 상태뿐만 아니라 양가의 근황 토크도 이어 나갔다. 이번 주에 너무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있어서 엄청나게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나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울러 Y네는 집돌이, 집순이들로 가득 찬 우리 집과는 다르게 바깥 활동을 즐겨한다는 이야기도 하면서 Y와 딸이 밖에서 놀 시간을 갖자고 했다. 이번 주에 나와 딸이 거의 집에만 있었던 걸 감안하면 반가운 제안이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기다려 준 아이들도 결국 참지 못하고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정확히는 Y가 문을 열고 엄마를 찾았다.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아이스 브레이킹할 때 할 수 있는 말들을 찾기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서로의 나이, 고향, 결혼이나 연애 여부 등을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발견된 공통점들에 대해서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유대감을 쌓았지만, 요즘은 이런 걸 물어보면 실례고 저런 걸 물어보면 매너가 없다고 지적받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결국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묻는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취미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취미가 같을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타율이 매우 낮은 질문이다.


딸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독서라고 답할 것이다. 딸은 어렸을 때 아내와 내가 읽어주는 책을 매우 좋아했고 그 덕분인지 지속적으로 독서에 관심을 가졌다. 이런 선호들까지도 유전이 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비록 요즘의 독서량은 미미하지만, 어렸을 때는 영어로 된 책들을 많이 읽었고, 아내는 지금까지도 독서를 열심히 하고 있다. 딸은 하루 중에 많은 시간을 독서하는 데 할애한다. 잠에서 깨자마자 책을 읽고, 자기 전에도 꼭 책을 읽다가 잔다. 심지어 친구 집에 가면 항상 친구들과 잘 놀다가도 새로운 책들을 탐험하고 읽는 시간을 갖는다. 여행을 다녀오면 그동안 독서에 대한 갈증이 쌓였는지, 시험 치기 전에 집중하며 벼락치기하듯 집에 오자마자 집에 있는 책들을 꺼내서 마구마구 읽어댄다.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Y가 엄마를 찾아서 나왔던 것도 아마 딸이 잘 놀다가 갑자기 쿨타임이 와서 책을 꺼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Y가 문을 열었을 때,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딸의 앞모습과 정수리가 또렷하게 보였다. Y가 하루에 백 번도 불렀을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다가왔다. Y는 분명히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부른 엄마였겠지만, 그 부름이 내게는 너무나 처연하게 들렸다. 우리 딸은 일주일 넘게 부르지 못한 그 이름이고, 언제 또 부를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


Y가 자기 엄마를 부르는 순간, 유아용 의자에 앉아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로 책을 읽고 있던 딸의 정수리가 사라지고 이내 얼굴이 나타났다. 딸의 눈동자는 내가 여태껏 봤던 딸의 눈동자 중에 가장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부잣집 창문 너머로 보는 부유한 집의 찬란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 모습을 보는 듯한 눈빛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최대한 빠르게 얼굴에 그려진 실망감과 부러움을 숨기려는 듯, 딸은 재빠르게 내게 정수리를 다시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Y는 엄마에게 재잘재잘 이런저런 말들을 해댔지만, 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고, 딸도 외면하려고 하는 것 같아 애처로움에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이러려고 딸을 Y네에 데리고 온 것도 아니었고, 그들도 우리더러 부러워하라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가 갓 없어진 아이가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하는 감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배려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하게도 그들이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불가피한 일로 인해서 우리 가족은 축소됐고, 제발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되길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잔인하지만 딸이 견디고 이겨내서 이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 가족원들은 모두 뉴 노멀(New Normal)에 적응해야 한다. 나는 딸의 눈빛을 보면서 불편한 진실을 맞이해야 했다. 딸의 그 공허한 눈빛에서 그 어떤 누구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저 열심히 하는 아빠일 뿐이지, 절대로 엄마가 될 수 없었다. 노력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