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에서 나태함을 추구한다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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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욕구의 이면에는 결핍을 갈망하는 존재론적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 이 태도의 근원은 인간의 인지 한계를 넘어 존재하기에 이해할 수 없지만, 생명이 유지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불안과 공포 등 부정적 감정의 토대가 되며, 동시에 안정과 만족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자, 자기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타인과 비교하거나 인정받으려 하고, 자기 위치를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은 물질과 내면적 이해를 추종하거나 심신을 단련하려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공감을 바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고, 성적 쾌락을 충족하고, 심신을 보호하고, 사랑을 갈구하고, 소속감과 존중에 안도하고, 자아실현에 몰두한다. 그렇게 일순하는 세계에서 자신이 끌리는 삶을 살아간다.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 나 자신을 알지 못하는 채, 자연스럽게 이 사회의 보편적 욕구를 추종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사는 동안, 그 무엇으로도 내 마음을 채우지 못했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할수록 무상함만 깊어졌다. 경쟁과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내 가치를 증명하여 성취와 만족을 얻기도 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이 사회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아무리 내 위치를 개선해도 정작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핍에 대한 갈망만 더 짙어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인간 본능과 사회적 욕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했고,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외면하거나 감춰왔던 내 모습을 마주했다.


먼 과거의 나는 술과 시시껄렁한 소리에 기대어 이성들과 희희낙락한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일상에 만족했기에 지금 돌이켜봐도 후회는 없다. 다만, 그 당시에도 그 순간의 즐거움이 일시적인 만족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지금도 본능적으로 같은 재미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 무의미함을 깊이 통감했기에 이제는 내게 큰 의미가 없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성적 본능이 생리적 욕구에 못지않게 강렬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도 그런 욕구가 없진 않지만, 경험적으로 본능적 쾌감보다 성숙한 정서적 사랑에 따른 만족에서 더욱 큰 기쁨과 만족을 얻었기에 둘 중에서는 정서적 사랑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고 싶은 물욕과 소비욕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욕구를 충족할수록 오히려 공허함만 더 커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나는 경험을 통해, 그리고 내 결핍을 마주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거치며, 내 위치를 확인하고 개선하려는 본능에 반발하는 인식을 얻었다. 그리고 그 인식을 다짐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나와 현실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또한 내면적 이해와 안정을 바라는 욕구를 충족하는 선택지에 불과하지만, 자기 자신을 모른 채 욕망을 좇는 것과 자기 자신을 알고 욕망을 좇는 것은 다르다.


지금 내 존재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서적 고요함을 지키면서, 자기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다른 인간적인 본능들은 내가 진심으로 우선하는 가치들에 비하면 사소한 욕망으로 여길 정도가 되었고, 그렇게 사소한 욕망으로 인지할 수 있다 보니 만족하기 위한 조건 또한 낮아져 이전보다 쉽게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순정을 전하며 신뢰를 나눠 정서적 고요함을 얻고, 나만의 인식을 정리하는 글을 작성하며 자기 인식을 개선한다면, 존재론적 불안을 잠재운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이외의 사소한 본능들은 이 사회를 단지 살아가기만 하면 쉽게 충족할 수 있을 정도다. 결국, 나는 나태한 삶을 추구한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할 수도 있고, 고독할 수도 있지만, 내게 주어진 마지막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러나 이 삶 또한 한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죽음을 향한 쇠약의 길에서는 그 끝에 다가갈수록 지난 행복을 망각한 채 본능에 매달릴지도 모른다. 존재가 소멸해 가는 과정에는 심신과 물질적 고통이 수반되어 비참할 수밖에 없기에, 그 어떤 확신도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종종 죽음을 느끼는 길목마다, 점점 작아지는 마음 한편에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큰 불안이 닥쳐와도 단 한 가지만큼은 기억할 수 있도록 내게 필요한 다짐을 새기고 또 새긴다.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순간에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했고, 내가 사랑한 사람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욕심이다.


2024년 0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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