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있는 한, 본능적으로 자기 존재를 인식하려 하며, 이 과정에서 그 본능에 순응하는 정신을 자기 내면에 끊임없이 각인하기 위해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이 타인에 대한 근원적인 갈망은 자신도 온전히 인지하지 못한 내밀한 기질을 상대에게 투영하고, 그 상대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확인하려는 원동력이 된다. 타인을 통해 자기 본성에 잠재된 욕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 은밀한 기세는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심상에 스며들어, 자신이 발산하는 고유한 매력의 이면에서 기회를 노리다가, 매력을 느낀 사람에게 자연스레 전해져 그 상대에게 본능적인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마다 끌림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고 인지 범위에 따라 정서적 거리를 형성하는 방식과 강도도 다르지만, 서로 내심 인간적인 끌림을 느끼고 본능에 솔직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호감을 키울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찰나에 일어난다. 본능에 순응하는 강도가 높고 그 본능에 따라 끌림의 기세를 기민하게 수용하며, 동시에 의사 표현에 적극적이라면 간단한 대화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호감을 극적으로 진전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반대로 본능에 둔감하고, 의사 표현에 소극적이고, 생각이 많다면 개인적인 호감의 진전이 더딜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 형성의 속도 차이가 관계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본능에 순응하는 정도가 강해도, 어떤 본능에 가치를 두는지, 그 본능에 관한 이해가 깊은지, 그 본능에 따른 태도와 가치관이 어떤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본능에 순응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인과의 소용돌이라고 여길 만큼 복잡하기에 종종 인지적 한계를 넘어선다. 따라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으며 언제나 뒤늦은 깨달음을 수반한다.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겉보기보다 훨씬 더 관계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었다. 과거의 상처들 탓에 날카로워진 자기 부정적 인식을 잠재우고자 늘 감정을 죽이며 담담해지고자 했고, 특히 관계에서는 그 무엇보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사람을 쉽게 믿지 않고, 거리를 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미성숙한 마음은 점점 더 고립되었다. 그렇게 좁은 시야에 갇히다 보니, 우연히 다가온 귀인에게도 도움만 받고, 미안함을 남긴 채 떠나보내고 말았다. 나는 상처받기 싫어하는 만큼 타인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데, 그때는 어리숙하게도 내 생각에 메몰되어 관계에 유연하지 못했다. 다시 돌아봐도 부끄럽고, 민망하고, 화끈거린다. 이 후회의 시간 속에서 나는 관계에서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지혜를 하나 얻었다. 그것이 이 관계에서 내게 남은 전부다.
서로에게 끌리는 관계는, 마치 같은 너울에 몸을 실은 듯 무심코 다가온 파도에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파도의 흐름에 따라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한다고 해도, 한동안은 같은 물길 속에서 서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람 인생이 같지 않듯, 시간이 흐를수록 물길도 점차 갈라지니, 가만히 있으면 삶의 흐름을 따라 순식간에 멀어지기도 한다. 둘 중 한 명이라도 헤엄쳐 상대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때로는 애써 헤엄쳐도, 서로 처한 상황이 급격히 변해 끝내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관계의 어긋남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어긋남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선택이 빚어낸 결과다.
관계는 본능에 순응하는 삶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 오래 지속된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내가 다시 기회를 맞이한다면, 나에 대한 상대의 긍정적인 의사를 그저 순수한 의미에서 기쁘게 받아들이고, 내 본능에서 비롯된 기세를 앞세우기보다 상대의 삶의 태도를 멀찍이 떨어져 응원하고 싶다. 결국, 관계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근원적인 본능에서 시작하지만, 그 본능을 넘어서야 비로소 지속될 수 있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 존중보다도, 내 마음의 진심과 깊이에 솔직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2024년 04월 26일
2025년 03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