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도시 밖에서 머무는 삶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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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이기심을 감싸고, 성가신 욕구까지 채워주는 사람에게 관대하다. 서로 마주할 일 없는 관계라 해도, 내밀한 욕구가 충족되는 한 그 가치에 만족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며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지극히 본능적이지만, 서로 절제한 욕망을 마주하며, 만족을 찾아가는 담백한 관계다. 이처럼 관계에서 만족을 얻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쇠퇴해 가는 삶에서 도달할 수 없는 막연한 이치를 좇기보다, 본능에 순응하여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회적 가치를 탐하며 자기 존재를 지키는 삶을 살아가려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취에 몰입하는 길인 만큼, 점점 가치 실현에 중독될 수도 있다. 본능에 충실한 시대적 흐름을 인식하면서도 충족에 대한 집착이 커지면, 오히려 인간사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이나 갈망하는 상대를 관조하는 힘을 잃을 수도 있다. 나쁜 관계에서조차 자신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자기 합리화하며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욕구를 채우며 살아가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욕망으로 관철한 삶에 잠식되고 싶지는 않기에, 욕구의 실현에 익숙함을 느끼면서도 매 순간 스스로를 돌아본다. 누군가에게 강한 끌림을 느껴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이상, 본능에 순응하기보다, 본능과 줄다리기하며, 그 긴장 속에서 만족을 얻는다. 그 만족은 미미하지만, 내밀한 층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내게는 막대한 경제적 성공이나 초월적인 깨달음보다 더 깊은 가치가 있다. 물론, 내 태도는 본능적인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주의자나 고립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본능만이 경험할 수 있는 깊은 충만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본능에 반발하는 본능을 따르기에, 강렬한 순간적 만족보다, 내 존재를 지키는 감각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치 사람 없는 어둑한 해변을 거닐 때 느껴지는 습한 공기 속 신선함 정도의 만족이다. 그 정도면 내겐 충분하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지금의 삶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만족한다고 답할 것이다. 외로운지 묻는다면 고독하다고 답할 것이고, 즐거운지 묻는다면 행복하다고 답할 것이다. 내가 이룬 것은 사랑뿐이지만, 나의 작은 만족들을 따스하게 아우르는 깊은 사랑이다. 늘 존재론적 고독을 느끼며 관계 속에서도 쓸쓸함을 떨쳐내지 못하지만, 연인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과 고독이 교차하는 감정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렇게 홀로 밤길을 걷다, 생각에 빠지고, 사랑을 느끼다, 어두운 시간 속에서 조용히 만족한다. 결국, 나는 욕구를 충족하려 하면서도 관조하기에 언제나 제자리에 머무는 삶을 살아가고, 사회적 흐름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는 이 본능이 뒤엉킨 사회에서 타인에게 만족을 주기 어렵다고 느끼기에, 상대가 잠시 머물다 떠나면, 나는 그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고립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대개 사람들과 거리를 두지만,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이 다가오는 경우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다면 호감을 쌓고 가깝게 지내기도 한다. 단지,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따금 서로의 본능적 간극을 실감하고, 그 간극이 거리감으로 이어지면 자연스레 멀어질 뿐이다. 서로가 알게 모르게 실망한 부분이 쌓이면서, 끝내 서로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진 탓이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 부족함 뿐이기에, 주로 나 자신을 자책한다. 그러나 관계의 끝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 뿐이고, 떠난 사람도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욕구가 만들어낸 관계의 도시에 머물다, 시끄러운 번화가를 지나, 어두운 도심의 끝자락을 지나, 불빛 한 점 없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가끔 들려오는 새소리를 듣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걸을 뿐이지만, 그 고요함에 만족한다.


2024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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