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불빛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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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찢을 듯한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거대한 파도가 연신 부서지며 절규한다.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할 듯한 해안을 따라 위압적인 절벽이 길게 뻗어 있고, 연안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짙은 해무가 거대한 암벽에 부딪혀 겹겹이 쌓여간다. 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모지의 끝자락에는 높이 솟은 등대 하나가 거센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뚝 서 있다. 그 육중한 등대의 꼭대기에서 규칙적으로 뻗어나간 강렬한 빛줄기가 어둠을 가르며 안갯속을 뚫고 먼바다로 나아간다. 혹여 이 안개의 모퉁이로 진입한 자들에게는 마지막 경고가 될 것이다.


탑 내부에는 등대지기 한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많은 등대가 자동화되거나 폐쇄되는 시대에 마지막 등대지기로서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다. 기괴한 공명음과 불규칙한 진동이 폐쇄적인 공간을 휘감으며 음산한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들지만, 지난 수십 년간 생활해 온 등대지기는 자신만의 낙원을 떠날 날이 최대한 늦게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는 매일 아침, 두꺼운 강철 문 너머 고원을 거닐며 해안 일대를 내려다본다.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살아 있는 듯 흐르는 안갯속을 응시하며 혹시나 난파되어 떠밀려온 이들이 있는지 살핀다. 돌풍이 몰아치는 이곳에서 그런 행동은 무척 위험하지만, 그에게는 그저 소소한 일상일 뿐이다. 세상과 단절된 이곳에서, 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조용한 바다였다. 주변에 암초 지대가 많고, 가끔 안개가 자욱해지기도 했지만, 맑은 날에는 맨눈으로 먼바다를 지나는 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날씨가 변하고, 지형이 변했다. 등대지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점점 나빠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우렁찬 파도의 포말이 절벽 해안을 강타하고, 그 섬뜩한 소음이 짙은 안개를 타고 등대로 번진다. 정신없는 날씨의 지칠 줄 모르는 기세에 마음이 심심할 틈이 없다. 등대지기는 반응 없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이 격오지에 얼씬하는 배는 없다. 등대지기는 참 다행이라고 여긴다. 밤이 깊어지고, 자기만의 일지를 슥삭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날카로운 곡소리가 울릴 때마다 등대지기가 몸을 뒤척인다.


이 고립무원의 등대는 오늘도 강렬한 빛을 밝히며 자신을 알리고, 접근을 경고한다. 하지만 그 빛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고, 이 쓸모없는 등대도 폐쇄될 것이다. 정확한 날은 알 수 없지만, 등대지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어둠과 공명하며, 어둠에 기대어 살아왔다. 그 울림이 멈추는 순간 그의 삶도 멈출지도 모르지만, 그는 늘 그렇듯 그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기 위한 삶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마지막 등대다.


2024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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