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시간 속을 살아가며, 그렇게 축적한 시간으로 자신의 마음을 감싸간다. 하지만 삶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지금껏 쌓아온 시간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연속된 생애로 마음을 겹겹이 감싸 보호하는 동시에 자신을 가두는 벽을 만들게 된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마음이 닿은 듯해도, 실은 각자 마음의 벽에 새겨진 가장 선명한 기억들만이 순간적으로 마주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마음을 둘러싼 무한한 시간의 겹에 상대의 그럴듯한 모습이 비치더라도, 그 모습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니며, 어쩌면 실체와 다를 수도 있기에 그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상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상대에게 매료되면, 그 모습이 드러날 때만 선택적으로 바라보며 진짜라고 믿어버릴 수도 있다. 혹은 상대의 이상적인 모습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상대에게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실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감싸고 있는 시간의 겹은, 자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본인조차 온전히 헤아리기 어렵다. 하물며 타인이 그 깊이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다 보니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도리어 더 멀어지며 스스로 상처를 입기도 하고, 그 시간의 겹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려다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이는 어쩌면 흔히 볼 수 있는 관계일 수도 있지만, 이런 관계에서는 언젠가 깊은 유대에 도달하더라도 서로에게서 초월적인 심적 평온을 느끼기는 어렵다. 따라서 각자의 시간의 겹을 유지한 채로, 영혼의 단짝을 넘어선 초월적인 평온을 함께 누리려면 상대의 내면을 억지로 파고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가치관에 따라 상대의 존재 자체에서 만족을 찾기 위한 논리적 이해와 직관적 깨달음을 쌓아간다면, 결국 둘만의 내밀한 만족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연인은 이러한 유대를 경험하고 있다. 연애 초기에는 소유욕이나 질투, 설렘 같은 본능적 감정이 많았지만, 긴 세월을 거치며 성숙한 사랑이 무르익어 상대의 본질을 조건 없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과는 별개로 관계에 대한 유대감이 더욱 깊어져 존재의 실제에 만족하는 유대에 이르렀다. 대화하지 않고 침묵이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존재론적 만족이 변하지 않기에, 그 자체로 마음 깊이 연결된 듯한 충만감을 느낀다. 즉 현실의 시간 흐름과 무관하게, 언제나 서로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와 연인은 함께하는 인생 속에서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에서 희로애락을 느끼지만, 그 기저에는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의 호수를 자유롭게 노니는 듯한 궁극적 평온이 자리하고 있기에, 감정의 소용돌이나 현실의 풍파가 변화를 몰고 와도 그 변화를 타고 놀 뿐이다.
다만, 이 초월적 유대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랑과는 별개의 감정이기에, 진정한 순수함만을 공유할 수 있다면 연인뿐만 아니라 이성 친구나 동성 친구 사이에서도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는 모든 사람이 쉽게 소유하거나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의도적으로 좇아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 이러한 인식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운명적인 연인을 만나는 것보다도 희박할 수 있으며, 설령 우연히 만나더라도 순수함을 온전히 나눌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연인 관계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한, 생존과 번영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기대나 일반적인 관계의 틀 속에서 관계를 명확히 정의하거나 특정 역할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강하기에, 다수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은 비현실적인 감상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어떤 유대는 이러한 틀을 분명히 넘어선다. 서로의 기질과 성격이 다르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산재해 있더라도, 깊은 신뢰와 내면의 교감을 바탕으로 지속될 수 있는 유대가 있다. 게다가 물리적 거리나 지속적인 소통에 구애받지 않는 유대이기에, 특정한 계기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자체로 충분함을 느낄 수 있다면, 의외로 손쉽게 시공간을 초월한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사람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서로의 무한한 시간의 겹을 완전히 넘을 수는 없지만, 관계의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 속에서 태어나며, 물리적 형태나 사회적 기준을 뛰어넘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서로의 존재를 깊이 느끼고 그 곁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기나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가 바라던 유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07월 09일
2025년 0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