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본능에 따라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특정 사람이나 상황에 끌린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의미 있는 관계와 경험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이 우선하는 끌림에 몰입하는 가치관을 형성한다. 하지만 사회는 예측할 수 없기에, 자신이 선택한 끌림에 충분한 시간을 쏟아도 언제나 만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시대가 만들어 온 인간상에 자연스럽게 매료되거나, 혹은 보편성과는 거리가 있는 내밀한 욕구에 관심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에 끌리든,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일률적인 성장과 성공을 숭배하는 사회의 협소한 기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학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가르치지 않고, 미디어는 본능적 집단이 만들어 낸 이상적인 삶을 단편적으로만 비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시대가 정립한 물질적·정신적 안정을 추구하며, 결국 자신도 모르게 사회가 제시한 길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삶에서 적당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신의 진정한 끌림이 무엇인지 깊이 재고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사회에서는, 타인에게 맞추거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외부의 영향력에 지나치게 신경 쓰며 자신을 보호하는 데만 집중하면, 정작 자신의 끌림을 발견할 여유조차 사라질 수 있다. 사회가 제시한 목표에 과도하게 몰두한 나머지, 다른 이들의 기대를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다 후회할지도 모른다. 혹은 부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기질과 맞지 않는 선택을 하여 불필요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자신의 가치를 억누르는 삶을 살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의 끌림을 찾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을 찾아 머릿속을 비우고 잡념을 덜어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세세하게 돌아보며, 내면 깊이 감춰 둘 수밖에 없었던 감정을 꺼내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고요한 풍경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에 끌린다. 내면의 평온과 안정을 추구하기에, 정적인 분위기를 선호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내 취향의 시끄러운 음악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조용한 공간에서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인간관계에서도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원한다. 연인과는 깊은 사랑과 안정감을 나누고, 그 외의 관계에서도 감정적으로 편안한 유대를 원한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정서적 공감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늘 고독하다. 완전한 사랑은 얻었지만, 그 외의 관계는 결국 내 욕심에서 비롯된 이상적인 관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다. 길고 긴 세월 속에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고, 그 거리감이 상황에 따라선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계를 유지한다 해도, 처음에 의도한 모습 그대로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분명하지 않은 거리감을 적당한 균형으로 여기고 만족하려 한다. 완전한 만족은 인간의 가치를 상실한 상태일지도 모르기에, 약간의 부족함 속에서 가능성을 느끼는 것은, 채울 수 없는 본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일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나만의 끌림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때때로 밀려오는 고독감을 마주하며 마음을 비우고, 다시 그 공허함을 나만의 끌림으로 채워간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고독을 더 깊이 직면하지만, 동시에 끌림의 소중함도 더욱 또렷이 깨닫는다. 이런 마음가짐 덕분에, 나는 사회적 기준과 상관없이 나만의 방식으로 적당히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06월 27일
2025년 03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