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으로 잊히고 싶다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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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삶 속에서 드러낸 가치관과 마음가짐은 죽음 이후에도 타인의 기억을 타고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그 가치가 인류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다면 역사적으로 널리 기억될 가능성이 크고, 구체적인 발자취까지 남긴다면, 그 기억은 더욱 선명하게 오래 남을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희석되어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아지겠지만, 그 사람에 관해 듣는다면 여전히 하나의 큰 사건을 일으켰던 인물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가까운 이들의 기억 속에 조용히 머물게 된다. 자신이 낳은 자녀에게, 자녀가 낳은 손주에게, 그리고 친구나 지인에게 기억된다. 하지만 이 작은 기억들은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희미해지며, 언젠가 완전히 사라진다. 남겨진 기록조차 마치 길거리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음악처럼 잠시 마음에 울림을 줄 뿐, 오래 기억되긴 어렵다. 또한 상대와 멀어진 이후에는 그와 관련된 기억이 더 빠르게 잊힐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은 누구나 살아가며 문득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본능에 따라 타인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기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고자 애쓴다. 그리고 관계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고 느낄수록, 언젠가 우연히 마주치거나 머릿속을 스칠 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평소보다 자신의 진심을 조금 더 솔직히 드러낼 수도 있다. 심지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도, 나쁘지만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랄 수도 있다. 그 마음은,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와 나쁘게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갈망 사이에서 비롯된 조용한 인내이며, 타인과의 인연이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는 관계로부터 성숙한 태도일 수 있다. 비록 타인에겐 작디작은 기억에 불과할지라도,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마음가짐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게 몰입하여 타인의 뜻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세월이 길었다. 그렇다 보니, 무언가에 관심을 가져도 시야가 좁아 간과한 부분이 많았고, 따라서 의사 표현도 편협한 경향이 있었다. 그런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도 있었겠지만, 분명 이상하거나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타인들의 관계 속에서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관계의 흐름을 보면서, 관계 유지에 있어 성숙한 태도를 어렴풋이 인지했다. 물론, 본 것과 실천은 다르기에 그 이후로도 스스로 실망한 일이 몇 차례 이어졌지만, 그럴 때마다 후회하고 반성하며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사람을 무척 경계하고 거리를 두는 편이지만, 마음을 연 사람에게는 깊이 몰입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쪽이다. 그래서 내 관심이 상대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거리감을 조절하려 애쓴다. 내 마음이 소중한 만큼, 그 상대의 마음도 소중하다.


지금 내 곁에는 나를 좋게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나쁘게 기억할 사람도 있으며, 점차 무던하게 멀어질 사람도 있다. 이런 구분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지는 기억 속에서 점차 의미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끼는 이들을 더 깊이 기억하고 싶은 내 마음의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도, 그들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소중히 여긴다 해도, 언제까지나 기억되긴 어렵다는 걸 알기에, 내가 그들을 더 선명히 기억하며 그 기억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려 한다. 그리고 그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도록, 이 깊은 마음은 마치 내 방 안의 작은 꽃병처럼 조용히 간직할 것이다. 나로서는 그저, 필요한 순간에 고마움을 조용히 표현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한다.


나는 어느새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시간이 더 적을지도 모를 삶의 문턱에 서 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보다 먼저 떠나는 사람을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수년전만 했더라면, 관계에서 내 진심을 더 전해야 한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가 상대를 아끼는 만큼, 그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지켜보는 선택을 할 것이다. 못다 한 말이라는 것도 어쩌면 순간적인 내 욕심일 수도 있으니,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을 기억하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내 기억 속에 담아둘 뿐이다. 이 애쓰는 마음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타인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슬픔보다는 내가 기억하는 쪽이 어쩌면 내게도, 그들에게도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싶다.


2024년 07월 11일

2025년 0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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