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욕구들이 모여 사회적 본능을 이루고, 그렇게 한 시대의 정당성을 획득한 가치들이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학교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사회가 마련한 질서를 배우며,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기 존재를 올바르게 인지하는 데 필요한 본능이 제한되고, 유전적 기질에 따라 드러나는 후속 본능들마저 조정된다. 개인의 고유한 가치가 사회 집단의 판단에 의해 억제된다. 특히 자아가 미성숙한 어린 시절, 사고와 감정이 급속히 발달하는 시기에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의 경험을 여과 없이 흡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회의 손때가 뭍은 제한된 가치관을 마치 고유한 가치인 것처럼 내면화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가치관을 자각하기도 전에 사회가 내민 선택지에 떠밀리고,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를 증명하느라 정작 잃어버린 가치를 찾으려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결국, 고독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자기 나이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억압과 제약의 정도도 다르다. 그러나 사회는 개인의 사정과는 무관하게 흘러간다. 이른 나이부터 누군가를 책임지고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강단 있고 어른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감정 표현을 허락받지 못한 기간이 늘어날수록, 혼자 묵묵히 감정의 문을 닫아가게 된다. 감정이 위축된 순간, 특정 대상에 대한 본능적 끌림이 나타나면, 강하게 의존하다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 인정과 성공에 몰두하거나 내면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거나 감정적 거리감을 두는 데 익숙해진 만큼 깊은 내면의 바닥에 깔린 결핍을 마주하기란 매우 어렵다. 결국, 활발해 보이는 외면과 달리, 내면에서는 어색한 감정을 불편하게 여기고 멀리하려 하기에, 사람들 속에서도 고독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보호받아야 할 때, 보호받지 못한 탓이다.
반대로 독립할 시기를 지나서도 주변의 사랑과 보호를 꾸준히 받아온 사람은 감정 표현을 억누르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는 경험을 반복한 덕분에, 타인에게도 자신을 비교적 편안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충분히 보호받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스스로 내면을 지키는 마음이 취약해져 예기치 못한 갈등이나 실망에 직면했을 때 의외로 간단히 무너질 수 있다. 특히 감정적으로 몰입한 상대에 대해서는 신뢰하는 사이라고 해도, 작은 오해나 단절의 기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과도하게 흔들릴 수 있다. 그 불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본능에 따른 자기방어보다 상대의 감정에 더 몰입하여 자신을 감정적으로 소진할 수도 있다. 결국, 담담해 보이는 외면과 달리, 내면에서는 늘 관계 실패를 자책하며 정서적으로 쇠약한 상태에서 깊은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내면을 단단히 다져야 할 때, 온실 속의 행복만을 바라본 탓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립과 외면을 반복 경험하며,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방법조차 잊었다.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다가오는 타인을 밀어내기 위한 정서적 방어선만을 쌓았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과 거리를 둘수록, 동시에 깊은 감정적 연결에 대한 갈망도 커졌다. 그래서 쉽게 감정을 내비치지 않으면서도, 한 번 감정을 나눈 상대에게는 급속히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과한 결핍에 의한 과한 기대였던 만큼, 그런 불안정한 관계가 언제까지나 이어지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인간적인 호감이 있는 상대에게도 상처받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더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힘든 시기마다 나를 지지하는 가족이나 연인이 있었기에,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아주 조금은 열어둘 수 있었다. 이제는 그 틈 사이로 스며든 타인의 따스함을 받아들여 마음을 회복하고, 감정이 지나치게 소진되지 않도록 깊은 관계를 갈망하기보다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려 한다.
감정의 속도와 무게를 조절하며, 내가 느끼는 고독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 것이다.
인생은 되돌릴 수 없기에, 새겨진 결핍은 지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살아있는 한 고독감도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그 결핍에서 비롯된 기대는 처음에 품은 형태로만 간직할 필요는 없다. 마음을 완전히 닫지 않으면서도, 나를 덜 소진하는 방향으로 고독을 향하는 길의 속도와 모양,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치는 감정의 결도 조금씩 바꿔 갈 수 있다.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2024년 07월 23일
2025년 03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