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묻어온 길목에서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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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유롭게 쉬다가 내 손을 펼쳐 보거나 잠시 머릿속을 비우고 멍하니 있다 보면, 문득 깊은 정적에 빠져들며 오감이 예민해진다. 그 순간에는 일상의 흐름이 잘게 쪼개어지듯 느껴지고, 그러한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내 존재가 살아있다는 감각 또한 선명하게 깨어난다. 숲길을 거닐며 뺨을 스치는 흙 내음을 맡거나 바람 부는 숲속에서 잎사귀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때,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을 때조차, 내 시선이 머문 곳을 주시하다 보면 나만의 정적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조용한 시간의 틈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의 결을 온전히 느낀다. 이 고요한 순간은 외부의 기세로부터 흔들리는 내 마음을 품어 안는다. 누구보다 깊은 정서적 연결을 갈망하면서도, 도리어 그런 사람들이 속한 사회에 지쳐간 내가, 결국 아무것에도 간섭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쌓아 올린, 나를 지키는 동시에 가두는 침묵의 벽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외부의 시선을 따라 나를 증명하려 하기보다, 내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사회적 자유보다 개인의 자유를 거듭 선택하는 삶에서, 세상의 기준과는 멀어지는 나만의 시선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나누는 말이 점점 줄어들고, 말이 줄어들수록 곁에 머무는 이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사회라는 틀에서 한 걸음씩 물러서며 무기력한 도피자에 가까워진다. 여전히 더 나은 삶과 경험을 원하지만, 동시에 나를 억누르려는 사회에 얽매이지 않으려 애쓴 결과다. 아무것도 없이 스스로 만족하며, 고독만을 마주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붙잡고 있는 이 만족이 때때로 공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적이 길어지는 시간 속에서, 나의 끝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마주할 때면, 불안과 공허함도 지금 이 순간이기에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에, 이제는 단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사회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이 모습도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기에, 나는 내가 선택한 고독에 만족하려 한다. 또한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기에, 그들이 사회 속을 걸어가는 모습을 선망하고 응원한다. 내게는 그들과 같은 기세와 의지가 없으니 그들의 열망을 헤아릴 수 없지만, 그들이 야망을 이뤄가는 과정을 지지하고 그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이런 내 마음은 좀처럼 전해지지 않을 수 있고, 그들에겐 스쳐 가는 감상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따뜻한 감정 한 덩이를 조용히 건네고, 내가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만족하고, 또 만족하려는 삶을 이어가다 보면, 아무도 없는 방에서도 가만히 만족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오늘도 나를 묻어온 길목에 잠시 머문다. 여느 때처럼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다. 늘 조용하기만 하다. 그렇게 조용하기에, 조용한 것에 만족하려 한다.


2024년 07월 27일

2025년 04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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